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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가진 것이 적은 가난한 사람들, 선택할 땐 더 신중하고 합리적

입력 | 2012-05-12 03:00:00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지음·이순희 옮김
396쪽·1만7000원·생각연구소




모로코의 빈민촌에 사는 오차 음바르크 씨에게 저자가 묻는다. 추가 소득이 생기면 뭘 하겠는가. “음식을 더 사야죠.” 더 많은 돈이 생기면? “더 맛있는 음식을 사야죠.” 그런데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그의 집에 TV, 위성수신안테나, DVD 재생기가 빼곡히 차 있었다. “아, TV는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겁니다.” 외진 마을에서는 극장도, 공연장도, 외지인을 볼 기회조차 없었다. 당장 굶어죽지는 않는 이곳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지루함의 극복이었다.

책은 세계 빈곤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지금까지의 경제학자들과 다른 시각을 들이댄다. 많은 국제적 원조에도 빈민이 줄지 않는 이유는 정부나 비정부기구들이 그들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가난은 곧 굶주림’ ‘가난한 사람에게는 식량이 중요하다’는 1차원적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비합리적이고 게으르며 무능하다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책에 따르면 빈자들은 건강과 재테크 등 여러 분야에서 미래보다는 현재에 유익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빈자들이 치료가 아닌 예방에 무신경하다고 해서 건강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가 이들에게 미래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대신 ‘선거공약식’ 물량 원조만 반복한 탓이라는 비판이 이어진다.

저자들은 인도, 탄자니아, 모로코 등 세계 각국의 빈민들을 직접 찾아 현장조사를 벌였다. 영양 섭취, 의료, 교육, 출산, 보험과 소액금융 등 빈민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회가 가진 통념을 조목조목 부순다.

한국판 책의 제목에는 ‘가진 것이 적을수록 선택은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논리가 담겼다. ‘그 선택이 미래지향적이도록 돕는 것은 사회의 몫’이라는 후략(後略)은 통계자료와 설문조사 결과, 사례가 뒷받침하는 치밀한 주장으로 본문 속에 담겼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