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개발 등 특수사업용 ‘페이퍼컴퍼니’
4개 저축은행이 대주주들의 비리와 부실경영으로 영업이 정지되면서 이들이 투자하거나 대출을 해준 SPC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영업이 정지된 저축은행의 대주주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금융회사 본연의 기능보다는 부동산 개발, 카지노 같은 이권사업을 위해 차명(借名) SPC를 대거 세워 예금자들의 돈 수천억 원을 투자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되거나 수익을 거두는 사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오히려 대주주들이 이 대출금을 가로채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축은행 비리의 ‘대부’ 격인 부산저축은행도 무려 120개에 이르는 SPC에 4조 원이 넘는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했다가 천문학적인 손실을 본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대주주 개인이나 차명 소유로 운영이 되는 SPC가 저축은행 부실사태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입니다.
SPC는 원래 목적을 달성하면 자동으로 해산하기 때문에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동산 개발 같은 특수한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설립한 회사까지 SPC로 일컫고 있습니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도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 기회를 잡았을 때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뒤 SPC를 만들어 활용하기도 합니다. 금융시장에서 수익성이 높다고 인정되면 모기업의 신용도에 상관없이 SPC 명의로 대규모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PC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는 단연 프로젝트파이낸싱(PF)입니다. PF란 돈을 빌리는 사람 또는 법인의 신용이나 담보 가치 대신 사업의 수익성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법으로 부동산 개발에 널리 활용됩니다. 1920년대 미국 유전개발 사업에 활용되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PF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SPC들도 함께 생겨나 각종 수익사업을 주도했습니다. 최근에는 리스크가 커 자금 조달이 어려운 영화 제작사업에도 SPC가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SPC와 PF를 통한 부동산 개발사업은 수익성만 뒷받침되면 훌륭한 사업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신용도가 낮고 자본금이 적더라도 미래의 수익성만 기대된다면 PF를 통해 자금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SPC를 만든 회사는 손쉽게 자금을 조달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금융회사 역시 일반 대출보다 높은 금리를 매겨 수익을 거둬갈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잘만 굴러가면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는 겁니다.
문제는 SPC가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때입니다. 특히 저축은행들은 대주주들의 개인, 차명으로 운영되고 있는 SPC를 통해 수천억 원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습니다. 정확한 검증이나 실사 작업 없이 대주주들의 말 한마디로 거액이 대출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특히 대주주들은 SPC 사업을 잘 운영하기보다는 이 돈을 빼돌려 이득을 얻는 것에만 몰두했습니다. SPC들이 대주주들의 ‘비자금 창구’로 이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