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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st]기아차 대형 세단 ‘K9’

입력 | 2012-05-15 03:00:00

고속주행 안정감 ‘세계 名車급’… ‘후륜’ 장점 희석 오버행 아쉬워




9일 강원 양양군 일원에서 열린 시승 행사에서 기아자동차의 대형 세단 ‘K9’이 달리고 있다. 기아차가 2008년부터 4년 5개월간 5200억 원을 들여 개발한 K9은 고속 주행에서의 높은 안정성과 헤드업디스플레이(HUD) 등 다양한 첨단장치가 돋보인다. 차 이름의 숫자 ‘9’는 최상위 모델임을 뜻한다. 기아자동차 제공

기아자동차의 대형 세단 ‘K9’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고속 성장을 대변한다. 2002년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던 10년 전만 해도 기아차는 럭셔리급 대형 세단 부문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다. 엠블럼을 가리고 당시 기아차의 최고급 차였던 ‘엔터프라이즈’와 K9을 나란히 비교한다면 불과 10년의 간극을 두고 한 회사가 만든 제품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K9은 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고급브랜드와 맞대결을 하기 위해 개발한 차다. 기아차는 이 차에 처음으로 후륜구동(뒷바퀴 굴림) 방식과 각종 첨단 편의장치를 대거 적용했다. 9일 강원 양양군 일원에서 ‘K9 3.8 GDi’를 시승하며 이 차의 상품성과 기술력을 평가했다.

외관은 일부에서 지적하는 대로 기존 해외 고급브랜드의 특정 차량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개발 과정에서 차의 적정한 비례나 디자인 요소 배치 등 독일산 고급 세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겉모습은 길이 5m가 넘는 실제 크기에 비해 차가 그리 크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막상 실내에 들어서면 넓은 공간에 놀란다. 디자인 설계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열거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편의장치를 적용해 조작버튼이 일반 차량의 서너 배나 많지만 적재적소에 배치해 적응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주행 성능은 같은 플랫폼(차체뼈대)과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등 동력계통)을 사용한 현대차 ‘제네시스 3.8 GDi’와 비교해 상당히 많은 개선을 이뤘다. 8단 후륜변속기와 3.8L급 가솔린 직분사식 엔진의 맞물림이 더욱 매끄러워졌다.

특히 고속 주행에서의 안정감이 인상적이다. 시속 60km 정도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속도계는 시속 100km를 넘어선다. 체감속도가 실제 주행속도에 비해 현저히 낮다. 흡·차음재 보강으로 실내 소음을 줄이고 진동을 최대한 억제한 결과다.

조향성능(핸들링)은 상대적으로 아쉬웠다. 고급차 특유의 안락한 승차감을 구현하다 보니 날카로움이 많이 줄어든 탓이다. 차체 앞쪽 오버행(앞 범퍼에서 앞바퀴까지의 거리)이 동급 고급차에 비해 긴 편인데, 시야를 넓게 확보해 운전이 편하다는 장점이 후륜구동의 특성인 핸들링의 날카로움을 살리지 못했다.

편의장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경계를 지켰다. 앞 유리창에 각종 주행정보를 표시하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 텔레매틱스 서비스 ‘유보(UVO)’는 활용도가 높다. 차량 통합제어시스템(AVSM), 후측방 경보시스템, 시트 진동 경보시스템도 운전자의 실수를 최대한 감싸준다. 주요 기술이 기존 외산 고급차에서 먼저 적용돼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처럼 다양한 기능을 한 차에 모아내는 기술력을 절대 무시할 수는 없다.

‘흠잡을 데 없는 고급 세단.’ K9에 대한 총평이다. 일반적인 대형 세단 이용자에게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수준 이상의 성능에 첨단 장치까지 갖췄다. 현대차 ‘에쿠스’와 제네시스 중간에 위치하는 가격대(5290만∼8640만 원)는 기업체의 임원용 차량 교체 수요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성공적인 추격자’인 한국차 업체에 남은 숙제는 ‘선도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기아차는 “벤츠나 BMW에 뒤지는 점이 없으면서도 가격은 절반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아직은 마케팅 전략 정도로 여겨지는 발언이다. 진정한 경쟁은 벤츠 BMW와 같은 값을 받는 차를 만들 수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 앞으로의 10년은 브랜드 가치와 더불어 기아차만이 내세울 수 있는 고유의 운전 감각과 일관된 콘셉트를 정립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양=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