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엽기녀들, 변태악당 맞서다
동아일보DB
우리 사회의 각종 사건사고에서 영감을 얻어 나만의 스토리를 창작해보는 작업이야말로 시나리오작가가 되기 위해 받는 대표적인 과제다. 최근 사건들에서 나만의 영화 스토리를 만들어보자.
먼저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남성 방송인 K 씨(36)의 사례. “합의하에 했다”고 주장하는 K 씨 측과 “당했다”는 피해자의 공방을 중심으로 한 법정스릴러를 먼저 생각할지 모른다. ‘미기남’(미성년자를 기다리는 남자)이라는 저질 비디오영화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회장이 회삿돈을 빼돌려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체포된 사건에서도 휴먼 드라마를 떠올려볼 수 있다. 시작은 1980년대 대학가. ‘독재 타도’를 외치던 K는 정보당국에 의해 쫓기다 중국으로 밀항한다. 10년 만에 돌아온 K는 혁명의 동지이자 평생을 함께하기로 언약했던 L 양을 찾았으나 그녀는 신흥자본가와 결혼해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15년 만에 굴지의 저축은행 회장이 된 K는 L에게 복수하고자 그 남편이 오너로 있는 그룹을 인수하지만, 밀려오는 허망함을 참지 못해 서해로 몸을 던진다…. ‘서해’ 같은 센티멘털한 제목이나 ‘돈의 맛’ 같은 제목이 적합할 듯.
어떤가. 상상은 돈도 들지 않는 데다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지 않느냐 말이다. 요즘 사건 가운데 단연 시나리오 소재로 최고로 생각되는 것은 통합진보당에서 일어난 ‘활극’일 것이다. 이정희 전 공동대표의 말에서 영감을 얻어 ‘침묵의 형벌을 받으마’ 같은 시나리오를 떠올릴 수 있을 듯. ‘총알 탄 사나이’ 같은 액션코미디가 제격일 듯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외계인 종족이었다’는 반전을 넣어 ‘맨인블랙’이나 ‘지구를 지켜라’의 아류작 분위기로 만들어도 괜찮을 듯.
도박판 승려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도 가능하다. 불공을 드리기 위해 산 정상의 법당으로 향하다 그만 발을 헛디뎌 어머니가 숨지자 부처를 증오하게 된 아들이 스님이 되어 술, 도박, 여자를 의도적으로 가까이 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부인하다 결국 큰 깨달음을 얻고 등신불이 된다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영화 ‘굿바이, 3관왕’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