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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부-명예-권력 쥐고 타인 운명까지 탐내다… 신을 넘본 ‘知天命의 팜파탈’

입력 | 2012-05-15 03:00:00

연극 ‘헤다 가블러’ ★★★★




배우 이혜영이 나른하게 누운 모습도 그림이 됐다. 13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와 ‘헤다 가블러’의 타이틀롤을 맡으며 존재감을 유감없이 과시한 이혜영(오른쪽)과 그를 유혹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브라크 판사 역의 김정호. 명동예술극장 제공

헤다 가블러는 여성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지녔다. 명문가의 혈통에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총명하다.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모두 지닌 도도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는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것도 교수 자리가 보장된 헌신적 남편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이틀 뒤. 도대체 헤다는 왜 극단적 선택을 한 걸까.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문호 헨리크 입센이 말년에 발표한 희곡 ‘헤다 가블러’는 그 이유를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농축된 캐릭터와 이야기로 풀어낸다. 중간휴식시간을 포함해 2시간 40분의 공연시간 내내 무대는 하나의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 6개월에 걸친 긴 신혼여행을 마치고 어제 저녁 도착한 헤다의 신혼집 거실이다. 내용 역시 유한부인의 일탈이 초래한 평범한 비극으로 환원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자칫 지루하기 쉬운 연극이다.

하지만 명동예술극장이 기획한 연극은 놀라운 흡입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등공신은 인간 본성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마성(魔性)에 대한 해부학적 통찰을 토대로 이를 팽팽한 극적 구조로 재구성해 낸 입센의 필력이다. 하지만 물 만난 고기처럼 무대를 장악하고 마치 유영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 배우 이혜영의 존재감 또한 대단했다.

이혜영은 올해 지천명을 맞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이혜영이 20대 중반의 헤다를 연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못 느꼈다. 헤다의 남편인 이외르겐 테스만(김수현)과 옛 애인 옐레르트 뢰브보르그(호산), 심지어 호시탐탐 헤다를 탐하는 브라크 판사(김정호) 역의 배우들이 이혜영보다 여덟 살 이상 젊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흡입력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엔 분장의 힘이라고 말할 수 없는 배우의 매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공간과 공간을 이동할 때의 유연한 몸놀림, 귀족적 무심함과 팜파탈의 요염함이 교차하는 눈빛, 사막의 무미건조함과 버드나무의 나긋함이 뒤섞인 음성….

이런 요소는 “불가해하다”고 설명되는 헤다의 매력과 절묘한 공명을 이뤄냈다. 헤다는 스스로 단 한 가지 재주밖에 타고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바로 “죽을 정도로 지루해하는 것”이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것은 많은 신화 속 여성들의 공통점이다. 결코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연 판도라나 절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 역시 자신들의 지루함을 달래려다 일을 벌인 것이다. 그것이 남자들에게 재앙이 된다.

헤다의 차별성은 다른 데 있다. 그가 욕망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욕망의 주체가 되기를 꿈꾸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헤다가 남편의 성(姓)인 테스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성인 가블러를 고집하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의 표출이다. 가블러는 아버지를 상징하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가 비범한 뢰브보르그가 아니라 평범한 테스만을 배우자로 선택한 것 역시 같은 이유다. 뢰브보르그가 출세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지만 테스만이 출세한다면 그것은 헤다의 남편이기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헤다는 자신이 만인의 욕망의 대상이라는 것을 지렛대로 삼아 그 만인을 마음대로 조종하기를 꿈꿨다. 그래서 테스만에게 돌아갈 교수 자리가 뢰브보르그에 의해 위협 받자 자신의 치명적 매력을 활용해 뢰브보르그가 스스로 파멸하도록 유도한다. 신의 영역을 넘보기 위해 인간의 도덕을 뛰어넘으려 했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여성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마지막 순간 헤다는 자신의 손아귀에 움켜쥐었다고 생각했던 ‘운명의 끈’이 브라크 판사의 손에 넘겨졌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헤다는 헤다 가블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출가 박정희 씨는 이런 자기파멸의 비극을 시간의 얼개를 능수능란하게 풀었다가 감았다가하는 무대연출로 풀어냈다. 아쉬운 점은 이를 사실적 연기의 정공법으로 풀어내기보다는 춤을 추는 듯한 배우들의 상징적 몸짓으로 함께 담아내려 한 점이다.

이혜영을 제외하곤 이런 시도가 대부분 희화화돼 표현되고 말았다. 다른 배우들의 사실주의 연기 호흡도 빼어나다는 점에서 과유불급으로 비쳤다.

:: i :: 28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