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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무지개色 깃발

입력 | 2012-05-16 03:00:00


“뉴욕에 괜찮은 싱글 여성은 많은데 괜찮은 남자는 모두 유부남이거나 게이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 나오는 대사다. 진짜 ‘동성애자의 천국’은 뉴욕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다. 동성애자들이 모여 사는 카스트로 가(街)에서는 매년 6월 동성애자들이 모여 무지개색(色)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게이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이 페스티벌은 지금은 샌프란시스코가 자랑하는 관광 명물이 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카스트로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시장에 당선될 수 없다.

▷1978년 11월 27일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고문 하비 밀크가 조지 모스콘 시장과 함께 시청 안에서 동료의원 댄 화이트에게 살해됐다. 6·25전쟁에도 참전했던 밀크는 미국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인물. 동성애 혐오론자인 화이트가 일급살인이 아닌 충동살인이 적용돼 7년 8개월의 가벼운 형을 선고받자 분개한 전국의 동성애자들이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항의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내용이 2008년 영화 ‘밀크’로 만들어지자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밀크에게 성적(性的) 소수자의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추서한다.

▷무지개색이 동성애를 상징하는 것은 소수의 성적 취향을 비롯한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의미다. 무지개 깃발을 디자인한 화가 길버트 베이커는 당초 빨주노초파남보 7색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남색이 빠진 6색만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무지개색 셔츠나 여행가방끈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미를 모르고 쓰는 것 같다. 외국에 나가 자칫하면 동성애자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실제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가에서는 집에 무지개색 깃발을 꽂아 동성애자임을 알리는데 깃발 없는 집을 찾기가 힘들다.

▷뉴스위크지가 표지에 ‘첫 게이 대통령’이라는 제목과 함께 무지개 왕관을 씌운 오바마 대통령 사진을 실어 화제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은 게이가 아니지만 동성결혼 지지를 빗댄 표현이다. 2009년 취임한 아이슬란드의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가 세계 최초의 레즈비언 총리다. 미국에서의 동성결혼 정책은 주마다 다르다. 기독교가 주요 지지 기반인 공화당은 동성결혼 인정을 반대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승부수인 ‘동성결혼 지지’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미국 대선도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