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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의 ‘광고 TALK’]여수가 남길 에펠탑은

입력 | 2012-05-16 03:00:00


김병희 교수 제공

두 번씩이나 박람회를 개최한 나라, 대한민국. 1993년 대전엑스포에 이어 19년 만에 2012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라는 주제 아래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많아 이래저래 화제가 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1909년에 미국 시애틀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는데, 그때 우리나라 기업도 참여한 흔적이 있다.

한미흥업주식회사의 미국시애틀박람회 광고(황성신문 1909년 4월 2일)를 보자. 광고 상단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미국시아틀대박람회’라고 쓰고,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도록 ‘美國시아틀大博覽會’라고 썼다. 헤드라인을 두 번씩 강조했던 셈. 오른쪽 내리닫이로 ‘청수상람(請垂詳覽·자세히 보시기를 청함)’이라고 쓴 다음, 왼쪽 내리닫이로 ‘이/을(이쪽을) 날마다 자셰히 보시오’라고 지시하며 시리즈 광고임을 알렸다. 3월 20일의 첫 광고 이후 4월 8일까지는 매일, 9월 7일까지는 주 1회 정도 나갔으니 대대적인 박람회 캠페인이었다.

보디카피는 다음과 같다. ‘미국시아틀대박람회 기문(記聞·들은 것을 기록함). 1909년 6월 1일 개회. 동년 10월 16일 폐회. 회장(會場·대회장) 면적 30만 평. 회비 2000만 환((원,환)). 출품가액 예량(預量·추정액) 1억만 환. 공전절후(空前絶後·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음)ㅱ 미려(美麗)ㅱ 대박람회. 대한제국 물품의 유일 출품자ㅱ 대한황성 전동 한미흥업주식회사.’ 시애틀 박람회의 개요를 설명하고 한미흥업 상품이 대한제국에서 유일하게 출품된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다.

시애틀 박람회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받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박람회가 끝난 후 대회의 기억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1889년 파리 박람회는 에펠탑이라는 상징물을 남겼다. 흉물스러우니 철거해야 한다는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파리 시장은 이를 파리의 상징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여 지금의 에펠탑이 있게 했다. 대전엑스포 하면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는 지금, 여수엑스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들으며 여수를 추억할 그 어떤 상징물을 지금부터라도 기획해야 한다. 박람회가 끝나면 방문객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엑스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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