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논설위원
정부 믿고 투자한 기업을 겁주다니
논란의 시작은…. 메트로9㈜가 2005년 5월 서울시와 맺은 실시협약에는 개통 시 운임을 ‘1580원 이하에서 자율결정’하기로 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2009년 6월 개통이 임박하자 협약을 어기고 “1∼8호선과 동일요금(900원)을 적용하라”고 명령했다. 계약자 한쪽이 상대에게 “계약 대신 내 말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1년 후 메트로9가 ‘적정요금 산정을 위한 협의’를 요청하자 서울시는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며 협상을 끌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누적적자와 자본잠식을 견디다 못한 메트로9가 협약의 ‘1850원(2012년) 범위 내에서 운임자율결정권’을 들어 지난달 운임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서울시는 ‘면허취소’를 거론하며 주저앉혔다.
경제적으로 보면…. 원가보다 낮은 운임에 따른 손실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요금을 올리면 지하철 이용자가 부담한다. 1∼8호선처럼 시 재정(전체 시민)이 지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순수 민자사업인 9호선은 다르다. 협약을 믿고 투자한 민간기업이 손해를 본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서울시 주장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공공요금 안정으로 시민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여론도 나쁠 리 없다. 굳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 성향을 거론할 사안도 아니다. 오세훈 전 시장 때도 똑같았다.
최근 들어 좌파는 메트로9의 2대 주주가 호주계 맥쿼리인프라펀드라는 점을 들어 ‘외자의 탐욕+민영화 폐해’ vs ‘이에 맞선 박 시장’ 구도로 프레이밍했다. 논쟁의 인화성이 커졌다. 하지만 실시협약 협상은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현대차 계열의 현대로템(메트로9의 최대주주다) 컨소시엄이 다 했다. 협상결과에 실망한 3개 은행이 이탈하자 로템은 대타를 찾아 나섰고 맥쿼리펀드를 발굴했다. ‘맥쿼리 특혜’를 주장하려면 “로템이 특혜를 따오자 누군가가 3개 은행을 압박해 포기하게 만든 후 빈자리에 맥쿼리를 넣어줬다”고 해야 한다. 억지다.
서울시, 정책신뢰성 가볍게 여기나
외자 논란도 무리다. 메트로9 주주 중 외국계는 맥쿼리펀드(지분 24.5%)뿐이다. 또 맥쿼리펀드 내 맥쿼리그룹의 지분은 종잣돈 3.8%뿐이다. 펀드 주주의 82%는 군인공제회 대한생명 등 내국인이다. 외자 맞는가.
정부가 약속을 안 지켜 투자자에게 손해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예기치 못한 정책적 필요 때문에 꼭 그래야 한다면 보상해줘야 한다. 겁박해선 안 된다. 현재 서울시는 민자SOC 사업을 몇 개 더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어떤 기업이 믿고 투자할까. 외국인들은 맥쿼리 논란에 무슨 생각을 할까.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