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물론 사적인 일이나 공적인 일을 막론하고 감성이 강력한 추진 동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정치 지도자가 개인적인 매력이나 원활한 소통을 통해 추종자들(followers)의 힘을 한데 결집함으로써 전쟁이나 재난 등 국난을 극복했던 역사적 사례들을 찾아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이성에 의거해 공공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 그 사회는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추구할 수 있다.
국민 감성 자극하는 비과학 ‘괴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논의하면 대개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합의 도출의 가능성을 일부러 외면이라도 하듯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괴담’이 성행하고 온갖 설익은 주장이 대치하면서 소모적 논쟁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정책결정이 잘못되고 정책집행이 지연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최근 발표된 한 국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91%)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응답했다.
물론 과학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사실 판단이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이 추구해야 할 가치 기준까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때로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채 한 세대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한국이 이뤄낸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역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운전자의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네 명의 꽃 같은 사이클 선수가 희생된 사건도 있었다. 인터넷 중독, 개인정보 유출, 인터넷 사이트에 떠도는 각종 인신공격과 비속어, 유해 사이트에서 비롯된 청소년들의 자살이나 살인 사건 그리고 스마트폰 중독에 이르기까지 그 역기능 사례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인터넷 중독자가 170만 명에 이르고, 만 5∼9세 유아의 인터넷 중독률이 성인보다도 높다는 충격적인 발표도 있다.
이 같은 역기능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 역시 과학자들의 진전된 연구 결과와 이에 근거한 합의 도출 및 공공의사 결정에 의해 모색될 수 있다. 미국에서 설탕보다 무려 500배나 강한 단맛을 가진 저칼로리 첨가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사카린을 예로 들어보자. 그처럼 인기를 누리던 사카린이 1970년대 후반 들어 사용이 금지됐다. 동물실험에서 방광암을 유발했다는 보고가 있은 직후였다. 그 후 소량을 섭취한 경우 사람에게 암이 생길 위험이 없으며 사카린 대신 설탕을 섭취하는 경우 비만 유발 등 오히려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음이 입증되면서 2001년부터 제한적으로나마 식용이 가능한 첨가물로 부활했다.
20여년 만에 ‘누명’ 벗은 사카린
인터넷 발달에 따른 게임 중독이라는 현상도 과학기술계의 지속적인 노력과 합리적인 정책결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hypai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