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받은 사람처럼 날 아껴준 ‘착한 남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스무 살, 세상과 삶에 대한 온갖 의문을 품고 신과 독대하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지며 괴로워하는 내 앞에도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빛을 증오하는 악마나 파괴자가 아닌 ‘선한 사람’이었다. 행복과 쾌락을 주는 대신 내 영혼과 마음을 담보로 저당 잡으려는 악마가 아닌 ‘멋진 남자’였다.
너무 생생하여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 당시 남산의 국립도서관과 시립도서관, 처음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들었던 독일문화원, 원숭이들의 고함 소리가 시끄러웠던 작은 동물원과 식물원, 해방촌의 회색빛 지붕들, 남산 삭도라는 꽤 이상한 이름의 케이블카, 내가 다녔던 숭의여중과 노란 옷을 입고 뽐내는 리라초등학교, 여학생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자주 걸던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수한) 남산공고 학생들이 농구를 하는 운동장, 그리고 명동의 돌체 음악감상실. 충무로로 넘어가 진미당 빵집의 반들반들 빛을 내는 단팥빵과 늘 불고기 냄새가 나는 진고개 식당, 파리는 안개에 젖어와 사막의 라이온이라는 영화를 본 대한극장…. 시간이 되면 프랑스문화원으로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여느 연인들처럼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종로서적으로 가서 책을 만나고, 다시 우리의 대화는 불변의 사랑과 도스토옙스키가 ‘회의의 터널 끝에서 만났다는 구원자, 예수’로 이어지면서 밤하늘의 별보다 풍성했고, 그 빛보다 총명했으며, 때론 밤바람보다 애잔했다.
그는 모순투성이, 불균형 덩어리, 미완의 존재를 위해 소명을 받은 사람처럼 나를 아껴주고 사랑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했고, 결혼(結魂)이라 명명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하나 됨을 서로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내 옆에 없다. 지상의 어느 가난하고 지저분한 골목길을 누비며, 약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맨마음을, 맨발바닥을 보듬어주며, 금과 은 대신 사랑과 눈물과 소망을 전해주고 있다. 단지 내 옆에 없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모든 게 멈춰진 상태이다. 멈춰진 시계처럼! ‘살았다 하나 죽은 자’라는 말은 나의 표제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 사람과 함께한 그 시간마저 없었다면 내 삶의 20대부터 40대까지, 즉 스무 해 동안 그와 함께하지 못했다면 나는 볼품없고, 졸렬하며, 구차한 불균형의 존재로 생의 나머지를 억지로 보냈으리라!
이 정도나마 나를 부끄러운 얼굴로, 숙여진 고개로 살지 않게 만들어준 ‘선하고 멋진’ 그 사람! 그리하여 나는 파우스트처럼 울부짖지는 않는다. 대신 그와 함께한 남산을 가고 싶어 자주 길을 나서지만….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신발을 다시 벗고 커피를 끓이며, 일산의 작업실에서 더욱 힘써 글을 쓴다. 오늘처럼!
노경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