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이승엽이 느낀 2003년과 2012년의 한국야구
9시즌 만에 일본에서 국내 무대로 복귀한 삼성 이승엽이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다 상념에 잠겨 있다. 그는 “한국에서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뛰어난 성적보다 후배와 야구팬에게 무엇을 돌려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15일 대구구장에서 만난 이승엽은 생기를 한 가득 머금은 소년 같아 보였다. “일본에서는 호텔에서 노트북만 잡고 살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과 동료가 있다. 무엇보다 야구팬의 따뜻한 환호가 있어 더 행복하다.”
○ “한국 투수의 힘에 놀랐다”
이승엽이 올 시즌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투수는 누구일까. 그는 의외의 인물을 꼽았다. “한화 김혁민의 공을 보고 놀랐다. 직구 구위가 정말 뛰어났다. 윤석민(KIA) 류현진(한화) 등 원래 잘 던지던 투수는 물론이고 김혁민처럼 젊고 강한 투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 “나 때문에 최형우 부진? 다시 부활한다”
이승엽은 타자 가운데 지난해 홈런왕에 오른 팀 후배 최형우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인 2003년까지 1군에서 형우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 그가 혼신의 노력 끝에 팀의 중심타자가 된 것은 강한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부진하지만 다시 살아날 것으로 확신한다.”
이승엽은 자신 때문에 최형우가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껴 부진하다는 것에 “말도 안 된다”고 했다. “형우를 더 괴롭히기 위해서 일부 언론에서 만들어낸 말”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던 이승엽은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예전처럼 홈런을 펑펑 날리고 팀이 1위에 올랐다면 그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타격(2위·0.373)만 괜찮을 뿐이다. 형우에게 영향을 줄 여지가 없다”고 했다.
○ “일본에서의 8년, 희로애락의 연속이었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산전수전(山戰水戰) 모두를 경험했다. 2006년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41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1군과 2군을 오르내렸다. 그는 일본에서의 8년을 “부(富)과 독(毒)을 함께 얻은 시간”이라고 했다.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는 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일본 투수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맞히는 능력은 좋아졌다. 하지만 이 때문에 스윙 폼이 작아졌고 과감성이 떨어졌다.”
그는 2003년 당시만 해도 공이 눈에 들어오면 거침없이 스윙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만 쳐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서른여섯 이승엽에게도 무서운 존재가 있다. 바로 어린이 팬이다. “두 아들이 크면서 그라운드에 나설 때는 유니폼 맵시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선수들이 어린이까지도 신경을 쓰는 야구가 진짜 선진국이다. 기록이나 실력도 중요하지만 ‘모범적인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 김병현 오늘 첫 선발… 승엽과 대결 ▼
둘의 맞대결은 모든 야구팬이 기다려온 빅매치다. 김병현은 “피하느니 차라리 (안타를) 맞겠다”며 정면승부를 선언한 상태다. 정민태 투수 코치는 “아직 완전한 컨디션이 아니지만 자기 스타일대로 던지면 이승엽과 멋진 대결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구=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