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쌓이고 쌓인 온갖 일로, 또한 그 모든 사랑의 부담으로도, 헐떡이며 살았던 젊은 날들을 이제 돌아보며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준 것, 드린 것보다는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 참으로 부끄럽다. 변함없이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을 둘러본다. 몇 가지에만 눈길을 주어도 지금껏 나를 지탱해온 큰 힘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된다.
아주 작은 접시에 담겨 내 방 작은 유리장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2cm도 안 되는 몽당연필. 언젠가 몹시 지쳐서 빈손으로, 딸과 함께 먼 나라의 기차 안에 앉아 있었을 때, 아직은 같은 기차를 타고 있지만 곧 그 기차가 다음 정거장에 닿으면 내려서 차를 갈아타고 아주 멀리로 갈 딸이 문득,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연필 한 자루를 부러뜨려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딸도 마침 연필 한 자루밖에는 필기도구가 없었다. 글을 쓰며 피로감을, 고독을, 온 인생의 짐을 져가라는 말없는 당부였다. 그 작은 몽당연필로 대단한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생을 감내한 것 같다.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추억 깃든 평범한 선물의 감사함
마른 꽃다발 하나. 9개월에 걸쳐 1만 km를 훨씬 넘게 내 손에 들려 다니다 이제 책장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커다란 노란 장미 다발인데, 작년에 큰 상을 하나 받게 되었을 때 존경하는 시인이 보내준 것이다. 그게 귀해서, 독일 바이마르에서 독일 서남쪽 끝 프라이부르크로, 거기서 다시 동남쪽 끝 파사우로, 다시 거기서 서쪽 프랑크푸르트로 해서 서울까지 바스러질세라 조심조심 들고 왔다.
어느 제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 한 권. 황송하게도 ‘스승이자 친구이자 어머니인 선생님께’란 글귀가 적혀 있어 값진 책이 되었다. 그리고 책상 위 두 개의 시계. 평범한 탁상시계이지만 어떤 제자가, 내가 1년의 절반 가까이 가 있어야 하는 독일의 시간과 미국에 있는 내 딸의 거처의 시간에 맞추어서 가지고 온 것이어서 내게는, 세상 그 어느 명품도 감히 넘보지 못할 귀중품이다. 지금 내 집 지붕을 뒤덮은 등나무 역시, 언젠가 학교에서 어느 학생이 주워다 준 씨앗을 심어 싹튼 것이어서 그 어떤 희귀 정원수보다도 귀한 나무다.
그 작은 것들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준 기쁨이 간직돼 있다. 살면서 받은, 헤아릴 수도 없는 이런 작은 선물들을 돌아보노라면, 가끔씩 치미는 이런저런 불평불만이나 삶에 대한 회의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이 작은 사랑의 징표들이 나를 삶에 붙들어두는 주인공인 것도 같다.
그런데 왜 나 자신은 무슨 날이 되면 그럴듯한 선물을 하기 위해 평생 그토록 조바심했던가. 무언가 생색나는 선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선물조차도 금방 가치가 평가되고 가격이 매겨질 것만 같은, 또 정말로 그렇기도 한 시류 탓도 있겠고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허영심도 얼마만큼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은 정작, 물건값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생색내기 위한 조바심부터 버려야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