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1889년, 아트블루 제공
예술가가 1위로 뽑힌 게 의외라 생각했는데, 가장 ‘좋은’ 직업이 아니라 ‘행복한’ 직업을 묻는 질문이란 점에서 수긍이 갔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조직의 일원으로서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겐 예술가들의 삶이 부러워 보일 것 같군요. 하지만 정작 예술가들에게 물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어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알려준 가장 단명하는 직업의 리스트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베스트 5’의 결과는 이랬답니다. 1위 언론인, 2위 작가, 3위 체육인, 4위 의료인, 5위 법조인. 이런 객관적인 자료를 종합해 본다면 작가인 저는 예술가라 행복한 직업을 가졌지만 단명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주 엉터리는 아닌 거 같습니다.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과 창작의 고통으로 명을 재촉하긴 하겠지만, 창작 후에 오는 깊은 만족감은 거의 신의 영역이라 생각되니 말입니다.
남의 간섭 받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창작의 기쁨을 맛보며,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유로움은 예술가에게 큰 행복입니다. 극심한 고통 후에 오는 창조의 기쁨은 마약처럼 끊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직업만큼 일을 하는 동안에 받는 고통의 강도가 센 직업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소설가가 소설만 안 쓰면 참 좋은데… ”라고 했던 동료 소설가의 말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 화가를 보면 엄살 그만 떨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빈센트 반 고흐. 평생 가난과 불운과 정신병에 시달리다 37세에 요절한 불행한 예술가의 전설로 남은 사나이. 사후에는 영원한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평생 팔린 그림은 딱 한 점이었답니다. 그는 유달리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입니다. 화력(畵歷) 10년에 남긴 자화상이 43점입니다. 자화상이지만, 또한 가난하고 불행한 예술가의 초상으로 이만한 작품들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작업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예술가의 자화상은 흔치 않지요. 불안한 기류를 표현한 듯 검은 배경에 야윈 볼과 고집스러운 매부리코, 불안과 두려움을 품은 눈동자로 무언가를 응시하는 고흐. 아마도 그는 이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팔레트와 붓을 들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왜 유독 자화상을 많이 그렸을까요? 답은, 모델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행복했을까요?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