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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당신의 손에 경배를…

입력 | 2012-05-19 03:00:00

◇당신의 손은 무엇을 꿈꾸는가 1, 2/김용훈 지음/각 권 312쪽·각 권 1만3800원
/21세기북스




약 30개의 뼈로 구성된 사람의 손은 인생 그 자체를 보여준다. 갓 태어난 아기 김비취의 손(1)은 새벽 호숫가 풀잎에 내려앉은 이슬의 느낌이다. 세상과 처음 만나는 설렘을 머금은 손이다. 구두수선 장인 우태하 씨의 손 (2)은 차돌을 닮았다. 생의 거친 굴곡에 광을 내고 도를 닦아 만질만질하게 다져온 손이기 때문이다. 도자기 명장 서광수 씨의 손(3)은 절벽을닮았다. 1300도의 장작가마 불꽃에도 지지않는 굳은 심지와 열정이 담긴 손이다. 21세기북스 제공

“어둠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손. 그 기운이 각각의 줄로 팽팽하게 전달되더니 마침내 인형이 서서히 일어선다. … 그의 손이 나무를 깎고 뚫고 다듬어 마리오네트 인형을 만든다. 왼손에 깊게 팬 상처도 나무를 자르다 얻은 것이다. 손바닥도 숱하게 까졌다.”

“하루에 300여 개의 부속이 그의 손을 거쳐 간다. 정교한 손놀림에 섬세한 부속들이 하나둘 연결되더니 비로소 완성된 시계의 모습을 갖춘다.”

20년 넘게 마리오네트 인형(줄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을 만들어 인형극을 연출해온 옥중근 씨와 50년 경력의 시계 수리 명장 남재원 씨의 손을 묘사한 글이다. 이 책은 10여 년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근무해온 게임회사 홍보실장이 다양한 분야의 사람 100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손’을 중심으로 풀어놓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저자는 “디지털 문명의 최첨단에 있으면서 늘 아날로그적 감성에 목말라 했다”고 썼다. “손은 묵묵히, 조용히, 그리고 진솔하게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굳은살과 상처, 손의 생김새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 시대의 평범한 소시민부터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유명인까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이태동 씨를 만날 때는 그가 일했던 극장과 동사무소, 몇 해 전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실은 신문사 등을 찾아다니며 연락처를 알아내는 데만 꼬박 4개월이 걸렸다. 씨름선수 이만기 씨는 저자를 만나자마자 초면임에도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자고 했다. 벌거벗은 채 인터뷰하니 속이 훤히 보여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이만기)의 왼손 엄지손가락은 오른쪽에 비해 훨씬 길고 크다. 왼손잡이인 그가 샅바를 잡아온 20여 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얼마나 독하게 훈련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손에 물집이 잡히는 건 수없이 지나가는 감기에 불과했다.”

수화 통역사 이경례 씨는 40년 넘게 쉬지 않고 사랑의 손짓을 이어왔다. 그의 손은 뇌보다는 마음과 연결된 듯한 따뜻한 손이다. 이 씨의 언니는 청각장애자였는데 자매는 잠도 안 자고 수화로 대화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엄마가 불을 꺼버렸지만 둘은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대화했다. 이런 사랑을 바탕으로 그는 수화 통역사가 됐다. 그는 가족의 입장에서 통역을 하기에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수화 덕분에 출세했지요. 내 능력으로 감히 서볼 수도 없을 대학 강단에 서고, 여러 공공기관에 두루 다니며 강의도 해 보고.”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 이두호 화백의 손과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고은 시인의 손은 그 자체로도 멋지다. 아흔아홉 번째 손의 주인공은 갓 태어난 아기다. 여리고 보드라운 손에는 이 화백이나 고 시인과 다르면서도 같은 삶의 무늬가 새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백 번째 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저자는 “그 누구와도 다르고 그 자체로 소중한, 이 책을 읽는 당신”이라고 지목한다.

책에선 단내가 난다. 저자가 수많은 이의 ‘손’을 잡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부지런히 다닌 덕분이다. 하지만 각각의 인터뷰마다 주인공의 ‘손’에 얽힌 사연이 읽다 만 느낌을 주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책 한 권씩은 될 만한 절절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인데 100명의 이야기를 책 두 권에 담다 보니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미확인비행물체(UFO) 전문가, 프로 게이머, 환경운동가, 기장, 카레이서, 미술품 경매사 등은 ‘손’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손은 인생 그 자체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아날로그적 열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는 엄마의 손을 맞잡으며 세상을 접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세상을 주무른다. 연인과 처음 손을 잡을 때 가슴 속 벅차오르는 사랑을 경험하고, 동료의 따듯한 악수에 위로와 힘을 얻는다. 그러다 결국 사람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생을 마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롯이 담긴 손도 좋지만, 이처럼 손과 손이 맞닿으면서 더해진 인생의 무늬도 함께 다뤄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