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돈 250억, 영재고철이 ‘저수지’- KEP가 ‘세탁소’?
노건평 사실상 소유 의혹 ‘KEP’ 20일 노건평 씨가 실소유주인 것으로 알려진 KEP 대구 동구 방촌동 사무실 모습. 4층짜리 건물 중 2층 198㎡(60여 평)를 사용하는 이 사무실의 출입구는 잠겨 있었다. 창문도 밖에서 볼 수 없게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월∼토요일 3명의 직원이 출근해 전기시설이나 기기를 연구하는 회사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노인호 기자 sun@donga.com
박영재 삼형제 소유 ‘영재고철’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에 있는 영재고철. 노건평 씨의 최측근인 박영재 씨가 실질적인 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서류상으로는 박 씨의 동생이 대표다. 김해=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영재고철과 KEP가 단서
문제의 뭉칫돈은 박 씨 소유이면서 명의는 동생 석재 씨로 돼 있는 ‘영재고철’ 법인 계좌를 통해 입출금된 것이다. 검찰은 기초 조사를 통해 이 계좌에서 수시로 건평 씨에게 수백∼수천만 원이 송금된 사실을 파악했다. 고철을 사고 판 돈이거나 사업과 관련된 자금뿐만 아니라 ‘검은돈’이 섞여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평 씨가 인사 청탁 및 이권에 개입하고 받은 리베이트를 이 계좌에 숨겨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 것 아니냐는 추정을 하고 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대통령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밝힌 점으로 미뤄 계좌 관련자는 건평 씨와 박 씨 외에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수상한 자금 250억여 원의 단서를 잡게 된 계기는 건평 씨가 실제 주인인 것으로 알려진 누전차단설비 제조업체 KEP와 무관하지 않다. 2006년 자본금 1억 원을 증자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낸 사람은 서류상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측근이었으나 돈은 박 씨 부인 계좌에서 인출됐기 때문이다. 문제의 1억 원은 곧바로 건평 씨가 인출했다. 이 돈은 건평 씨 부인 민미영 씨 계좌를 통해 건평 씨 처남에게 5000만 원, 사위에게 4000만 원이 송금됐다. 검찰은 이들 자금 흐름을 추적하다 2004년부터 2008년 5월까지 영재철강 계좌에 의심스러운 돈이 자주 입출금된 사실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 누전차단설비 업체가 부동산 개발만
KEP는 건평 씨가 이권에 개입하고 돈을 챙기는 과정마다 등장한다. 이 회사는 명의상 대표가 박 씨 고향 후배인 이석주 씨(55)다. 박연차 전 회장이 2004년 건평 씨에게 매각을 의뢰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땅 2만5000m² 가운데 2년 동안 처분이 되지 않은 땅을 개발해 팔기 위해 박 씨와 박 전 회장 측근인 정승영 전 정산개발 사장 등 5명이 2005년 7월 자본금 2억 원으로 설립했다. 이후 건평 씨는 2008년 사돈인 강모 씨(58)에게서 2억 원을 빌려 이 회사에 투자했다고 KEP 김모 감사(70)가 밝혔다. 회사 설립은 물론 실질적인 사주 역할도 한 셈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전기안전 제품을 생산한 실적이 없다고 검찰 관계자는 밝혔다. ‘자금 세탁소’라는 의혹을 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KEP가 박 전 회장 땅을 매각해 남긴 차익 14억 원 중 8억5000만 원을 건평 씨가 은행에서 찾아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 이 씨가 백지 출금전표에 자신의 도장을 찍어 주면 통장을 갖고 다니던 건평 씨가 필요할 때마다 인출해 썼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부분을 ‘업무상 횡령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 또 건평 씨가 통영 공유수면 매립사업에 개입해 챙긴 9억4000만 원 가운데 수표로 받은 3억 원을 이 회사에 송금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사자로 지목된 박 씨는 일부 언론보도와 관련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자결하겠다”며 “요즘 세상에 어떻게 ‘임자 없는 큰 돈’이 오갈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대구=노인호 기자 in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