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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를 들고]20대 직장여성이 찾아왔다… 놀랍게도 직장암 4기 “왜 이 나이에…”

입력 | 2012-05-21 03:00:00

김희철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김희철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23, 29, 33, 35…79, 81.

로또 번호는 분명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당시 대장암 수술 후 입원 중인 환자의 나이를 나열해 본 것이다. 젊은 대장암 환자가 너무 많아 놀랐다. 최근 입원 환자 17명 가운데 20대가 2명, 30대가 3명이라니? 젊은 환자가 늘면서 50 이하 숫자의 달갑지 않은 위력이 실감난다.

재작년 초여름 제주도에 사는 20대 후반 젊은 여성이 외래 진료실을 찾아왔다. 이런 연령층의 경우 대부분 치질이나 변비로 오는 경우가 많아서,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환자를 만났다.

그런데 환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면담 도중 환자의 병세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젊은이는 직장암 4기로 진단됐다. 항문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직장암 덩어리가 발견됐고, 암세포가 간과 폐로 전이돼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요즘까지 환자는 여러 치료를 받았다. 젊은 나이의 암 투병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전이된 암의 크기를 줄이려는 목적의 항암치료, 그 후 직장암과 전이암을 잘라내는 동시수술, 수술 후 8개월째 재발된 폐암 재수술…. 2년이지만 참으로 힘들게 지내왔다. 이제 최종 수술 후 10개월이 지났고 여전히 재발의 우려가 많지만, 아직까지는 건강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흔히 암은 노령화와 관련된 병이라고 한다. 진료실에서 보면 실제로 이 말은 틀리지 않다. 나이든 환자의 암 발병률은 현저하게 높은 편이다. 하지만 암은 젊은이에게 ‘치료 면제’ 특권을 주진 않은 것 같다. 젊은층에서도 암 발생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장암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10대 초반의 중학생 3명에게서 발견된 대장암을 수술하기도 했다.

문제는 젊은 나이일수록 암에 대한 대비 태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암을 걱정하고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에 따라 정기적인 검사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또 발병 빈도가 낮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젊은 연령층에 정기적인 검사를 권유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유로 젊은이에게 생기는 대장암은 병이 심하게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병의 치료 경과도 좋지 않을 수 있다. 젊은 사람에게 생기는 대장암은 유전적인 요소가 많고, 암도 근본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갖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에 예후가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가끔 “왜 제가 이 나이에 암이 생겨야 하나요? 검사할 나이도 아니지 않나요?” 하는 물음에 난처할 때가 있다. “젊은 나이에도 대장암이 생길 수 있다”는 대답을 하는 의사도 다른 한편으론 무력감을 느낀다.

암 치료를 받은 제주의 젊은이는 아마 지금 싱그러운 제주의 봄날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젊은이는 진료실에서 내가 들려준 얘기가 생각날 것이다.

“암으로 의심되는 여러 이상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 나이와 상관없이 대장암을 확인하기 위한 내시경을 받아보는 것이 병을 빨리 치료하는 길입니다.”

김희철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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