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 ★★★☆
디즈니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의 잔혹판을 겨냥한 창작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에서 입양아 4명이 메리 포핀스의 주제곡 ‘침 침 체리’를 편곡한 선율에 맞춰 원무를 추고 있다. 젊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노래 앙상블이 빼어나다.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그런데 분위기는 딴판이다. 동화가 아니라 스릴러다. 동화 ‘빨간 모자’를 스릴러로 풀어낸 할리우드 영화 ‘레드 라이딩 후드’의 접근 방식이다. 주로 피아노 반주로 진행되는 노래들 역시 위태롭거나 음산한 선율로 무장하고 있다.
1926년 독일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슈워츠 박사의 대저택에 화재가 발생한다. 슈워츠 박사는 불에 타 숨졌지만 슈워츠 박사가 입양한 4명의 아이들은 살아난다. 박사의 조수이자 아이들의 유모인 메리 슈미트(태국희·추정화)가 전신화상을 입어가며 구조한 덕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충격으로 그날의 기억을 통째로 잃었고, 입원했던 메리 슈미트는 실종됐다.
차별성이 뚜렷한 4명의 캐릭터가 봉인된 기억 속 진실에 접근하는 동안 겪는 심리적 불안과 갈등을 긴장감 있게 그려냈다. 5개의 액자 또는 문을 비틀어 겹쳐놓은 무대 한가운데 엎어진 대형 테이블 형상의 세트는 아이들이 알고 있는 현실 이면에 숨어있는 치명적 실재를 상징한다.
이 작품의 작사, 작곡, 연출을 맡은 서윤미 씨는 뮤지컬 ‘늑대의 유혹’과 연극 ‘밀당의 법칙’ 등 주로 로맨틱 코미디의 작가·연출가로 활약해왔다. 그런 그가 제법 묵직한 스릴러 뮤지컬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도 관객의 의표를 찌른다. 그것도 ‘록키 호러 픽처 쇼’와 같은 코믹 스릴러가 아니라 ‘쓰릴 미’와 같은 정통 스릴러로 상당한 완성도를 지녔다는 점에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내용을 한 꺼풀 더 뜯어보면 이 작품은 ‘메리 포핀스’가 아니라 일본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장편만화 ‘몬스터’를 빼닮았다. 몬스터는 구동독 시절 특별한 유전형질을 지닌 고아들을 대상으로 인간병기 실험을 하던 특수 보육원 출신의 쌍둥이 남매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가며 과거의 진실과 대면한다는 내용이다. 무대가 독일인 점, 고아들을 대상으로 한 비밀 생체실험이 등장하는 점, 그 결과 끔찍한 살인과 방화가 벌어진다는 점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무의식에 억눌린 기억 되찾기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제목은 차라리 ‘콰르텟(4인조) 몬스터’가 더 어울린다.
그런 점에서 여러 겹의 액자 구조로 된 무대에 걸맞게 동일한 사건에 대한 네 남매의 엇갈린 기억의 충돌로 극을 끌고 갔더라면 독창성을 좀 더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진실은 하나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4개의 기억이 투쟁을 펼친다. 서로 투쟁하는 4개의 기억의 퍼즐로 관객이 모호한 진실에 접근하도록 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집단의 기억으로서 역사의 형성과정이기도 하니까.
:i: 7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4만5000∼5만 원. 02-548-0597∼8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