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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여도지죄(餘桃之罪)

입력 | 2012-05-23 03:00:00

餘: 남을 여 桃: 복숭아 도
之: 어조사 지 罪: 허물 죄




똑같은 행위일지라도 상대방의 심리 변화에 따라 반응이나 평가가 다르다는 말로 ‘한비자’ 세난(說難)편에 나온다. 한비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옛날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었는데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 법에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발을 자르도록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들었다는 소식에 미자하는 임금의 허락 없이 슬쩍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한창 미자하를 총애하던 때라 임금은 이 일을 듣고 어머니를 위해 발 잘리는 벌도 잊었다고 그를 칭찬했다. 그리고 어느 날 미자하는 임금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먹게 되었다. 맛이 아주 달아서 나머지 반쪽을 임금에게 먹으라고 주자,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미색이 쇠하자 임금의 총애도 식었다. 한번은 미자하가 임금에게 죄를 지었다. 이때 임금은 이렇게 말하며 벌을 내렸다.

“미자하는 본래 성품이 좋지 못한 녀석이다.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타기도 하고, 또 일찍이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으라고 한 적도 있다.”

이 일화는 인간이란 자신의 정서나 현재의 심리적 상태에서 결코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간언하고 설득하려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살펴보고 나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비는 미자하의 이야기를 마친 후 ‘역린(逆鱗)’, 즉 군주의 노여움을 건드리지 않아야 성공적인 유세라고 충고한다.

윗사람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바로 윗사람의 마음이 늘 변화무쌍하다는 데 있다. 물론 그 상대가 마음을 쉽게 읽기 어려운 절대 군주일 경우엔 더더욱 어려운 법이고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란 늘 자기모순(自己矛盾)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에 법과 원칙을 따라야만 그런 치명적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