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지원단체 ‘물망초’ 도움으로 美영어연수 떠나는 연세대 박혜진 씨“드디어 꿈이 이뤄졌어요”
“물망초 도움 잊지 않을게요” 탈북자 지원단체 ‘물망초’의 첫 영어 연수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유학을 가는 박혜진(가명) 씨가 22일 연세대에서 미국에 가게 된 소감을 밝혔다. 박 씨는 신변 위험 등을 이유로 얼굴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2일 서울 연세대 캠퍼스에서 만난 박혜진(가명·23·여·정치외교 4년) 씨는 꿈에 그리던 미국 유학을 드디어 가게 된 사실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박 씨는 박선영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이 국내외 사회지도층과 함께 설립한 탈북자 지원단체 ‘물망초’의 첫 영어연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의원과 물망초 회원들의 후원으로 박 씨는 그토록 바라던 영어 공부를 미국 현지에서 8월부터 1년간 할 수 있게 됐다.
박 씨는 탈북청소년 사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9세 때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처음 두만강을 건넌 것을 시작으로 총 4번 탈북했다. 처음 나왔을 땐 중국 허베이(河北) 성 친황다오(秦皇島) 시 인근의 깊은 산골로 숨어들어가 중국인 새아버지의 감시와 폭력 속에 2년을 살았다. 마을 주민의 신고로 강제 북송된 11세 소녀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는 수용소의 비좁은 방에서 앉은 채로 잠을 자고 옥수수 40알로 한 끼를 해결했다. 다행히 한 달 반 만에 김정일 생일을 맞아 특별 석방됐지만 초주검이 돼 돌아간 고향은 그새 상황이 더 악화돼 있었다.
“석방되고 그때 처음으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죠. 더는 북한에 있을 수 없었어요.” 결국 모녀는 2000년 다시 두만강을 건넜지만 2년 반 만에 밀고당해 다시 북송됐다. 그때부터는 보위부 지도원에게 중국 돈 1000위안 정도를 찔러주면 석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두 번 더 탈북을 감행했다. 모녀는 2006년에야 몽골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토록 그리던 한국 땅이었지만 한국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박 씨는 “탈북보다 한국 공부가 더 어려웠다”고 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중국 산골과 북한 수용소를 오가며 보낸 탓에 한글이 익숙지 않았고 영어도 알파벳과 기본적인 단어 정도밖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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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는 검정고시를 통과해 연세대에 입학한 뒤로도 계속됐다. 박 씨는 “영어 원서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꼬불거리는 영어를 볼 때마다 머리가 굳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익힌 한국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했다. 박 씨는 우연히 북한인권단체의 추천으로 물망초 장학생 면접을 보게 됐다. 박 씨의 면접심사에 참석했던 박 의원은 “박 씨는 미래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장래가 기대돼 최종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박 씨의 꿈은 교육정책 전문가다. 대학원에 진학해 북한의 교육정책을 연구하는 것이 목표다. 박 씨는 “북한의 어린이들은 세 살 때부터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법만 세뇌 당한다. 당연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비판의식이 떨어지고 역사관도 김일성 부자 위주로 왜곡된다”고 했다. 그는 통일이 됐을 때 북한 청소년들도 빠르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체계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 연수를 다녀와서는 물망초 재단에서 설립할 예정인 탈북자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봉사활동도 할 계획이다.
“(이번 연수가) 기대하지 못했던 큰 행운이라 부담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잘해야 지금 이 순간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있는 탈북 동생들도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돌아오려고요.”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