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경계해야
돈을 부정적으로 그린 중세 기독교 미술. 말글빛냄 제공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 이야기다. 열하로 가는 여정 중에 ‘황금대’라는 곳을 지나면서 그곳의 유래를 적은 것이다. 엽기적이지만 아주 ‘리얼한’ 스토리다. 예나 지금이나 황금은 탐욕을 부추긴다. 그 탐욕이 도굴이나 살인도 불사하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돈에는 이런 참혹한 서사들이 따라붙게 된다. 고로, 돈은 결코 무성(無性)의 매개수단이 아니다. 연암의 말처럼 무덤에서 나왔고, 독약을 먹은 자들의 유물이며,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맞바꾼, 하여 엄청난 ‘사건들의 총합’이다. 대체 누가 이 인연의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그래서 부를 일구려면 그 잠재적 파괴력을 다스릴 만한 내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위의 글에 나오는 도적들의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솔직히 요즘의 사건들을 보면 위의 이야기는 소박한 수준이다. 부모 자식 간에, 부부 사이에, 친구 혹은 연인 간에 참으로 입에 담기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그 사연들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돈과 함께 떠돌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돈처럼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것도 없다. 그런데 돈이 생기면 나의 삶이 안정될 거라고?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현대인들은 돈이 갑자기 뚝 떨어지기를 바란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즉 우리 시대에 있어 성공은 곧 대박을 의미한다. 대박이란 무엇인가? 어디선가 ‘눈먼’ 돈이 뭉치로 들어온다는 뜻이 아닌가. 그만큼 ‘눈먼’ 돈들이 떠돌아다닌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게 얼마나 내 삶을 뒤흔들어 놓을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버블경제가 남긴 영혼의 버블이다. 여기에 휩쓸리면 존재 자체가 버블이 되어 언제 훅 꺼져버릴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