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시장 한계”… 기업들 신흥국 전문가 육성 붐금융권-中企까지 확산… 신시장 개척 첨병역 톡톡이건희 회장, 여성비율 높이고 체류기간 연장 주문
올 1월부터 아프리카 케냐에서 연수 중인 박재영 SK네트웍스 대리(오른쪽)가 케냐의 최대 커피생산업체인 도르만스의 마케팅 담당자와 만나 사업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SK네트웍스 제공
“아나콘다를 먹으면 디스토마에 걸릴 수 있으니 거절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이창규 사장)
최근 종합상사기업인 SK네트웍스의 사내게시판에는 이런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 회사가 해외지역전문가 과정을 만들어 올해 초 라오스 에콰도르 칠레 케냐 중국 등 15개국에 파견한 젊은 직원 21명이 수시로 글과 사진을 올리면 임직원들이 격려와 칭찬의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현재 진출하지 않은 42개국에 5년간 모두 300여 명의 직원을 내보내 해외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해 이 과정을 올해 처음 만들었다.
1990년부터 해외지역전문가제도를 운영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온 삼성그룹도 최근 이 제도의 강화에 나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해외지역전문가를 선발할 때 여성 비율을 30%까지 높이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는 (충분한) 언어 습득을 위해 체류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20여 년간 약 80개국에서 4400명의 지역전문가를 양성한 삼성은 역대 중남미 삼성전자 법인장 대부분이 해외지역전문가 과정을 거친 직원일 정도로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SK네트웍스의 해외지역전문가 과정을 직접 만든 이창규 사장은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직원들이 보내오는 사업 아이디어에 일일이 코멘트를 단다. 인도네시아에서 연수 중인 한 직원이 현지의 주유소사업 진출을 위한 보고서를 올리자 이 사장은 “과거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주유소 및 충전소 사업 제의가 있었지만 사업성이 높지 않아 접었다”고 답했다. 또 한 직원이 “중국 상하이 인민공원의 한 벽면에 부모나 조부모가 아들 및 손자의 결혼 배우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A4 전단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고 게시판에 올리자 “중국의 이런 분위기를 비즈니스로 엮어 보면 어떨까”라며 신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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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지역의 금융회사 인수를 추진 중인 우리금융그룹은 최근 신흥개도국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글로벌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올 초 중국 서부지역에 진출한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에는 인도 첸나이지점 개설 및 브라질법인 설립 등을 위해 해당 국가 전문가들을 육성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도 중소·중견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인도지역전문가 과정’을 개설했다.
올 하반기 브라질에서 공장 준공을 앞둔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공장 건설에 앞서 브라질 사정에 밝은 한국인 전문가를 찾는 게 매우 힘들었다”며 “국내 기업들이 브릭스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전문가를 이른 시일 내에 키워내야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