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쩐의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그래서 그토록 힘들게 번 다음엔 실로 허망하게 써버린다. 고급승용차, 명품, 그리고 아파트. 그것들이 자신의 존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것들을 통해 어떤 ‘삶의 서사’가 구성될 것인지 등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직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 소비의 핵심은 타인들과의 차별성이다. 남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을 누려야만 비로소 기쁨을 느낀다. 하여 이 레이스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때의 기쁨은 행복이 아니라 쾌락이다. 전자가 평화를 준다면, 후자는 슬픔을 동반한다. 쾌락은 비교를, 비교는 늘 결핍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마이더스’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마이더스는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된다는 신화 속의 제왕이다. 손만 닿으면 금이 되다니 완전 대박 아닌가. 근데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굶어 죽었다! 만지기만 하면 다 황금이 되어 버리니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사랑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손만 닿으면 그 누구든 황금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쾌락과 슬픔이 한 쌍이라는 결정적 증거다. 이 드라마 역시 엄청난 부를 주무르는 인물들이 등장해 서로 더 많은 돈을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 먹고 튀고 등치고.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유흥문화다. 양쪽이 팽팽히 맞서다 한쪽이 승리하면 자축파티를 하는데, 그 형식이 마치 짠 것처럼 똑같았다. 1단계: 고급 룸살롱에서 폭탄주를 마신다, 2단계: 노래방에서 광란의 몸짓으로 가무를 즐긴다. 드라마에선 여기까지 나왔지만, 짐작건대 3단계는 성접대로 이어질 것이다. 폭탄주-노래방-성적 쾌락. 이것이 그 피말리는 ‘쩐의 전쟁’을 치른 후에 받는 육체적 정신적 대가였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것이 곧 ‘돈의 맛’이다.
요컨대 ‘돈의 맛’은 절대 거저가 아니다. 반드시 그 맛을 본 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슬프다. 과연 이 쾌락과 슬픔 사이를 오가는 파국을 면할 길은 없는 것인가.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