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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 한줄]패션은 비정치적이다

입력 | 2012-05-26 03:00:00


《 ‘패션은 비정치적이다’

-오스카 드 라 렌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미소로 내 갈 길을 막는 이들은 내가 도(道)를 아는지 궁금해한다(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손길로 내 어깨를 잡아 세우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옷을 뒤집어 입은 거 같아요.” 또는 “옷에 구멍이 많이 났어요! 알고 계세요?”

세계 패션 5대 도시를 지향한다는 21세기 서울에서 뒤집힌 시접과 의도적으로 드러난 구조를 구분하지 못하고, 소재의 인공적 공백을 좀의 서식지로 착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나는 그들의 시선 한편에서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의 소설)식의 경고를 받는다. 너는 왜 달라 보이고 싶어 하지?

옷을 입고 자기 방을 나서는 건 하나의 제의(祭儀)다. 거울을 보고 주문을 외며 하루의 우주를 완성한다. ‘나의 매력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기를.’ 비기(秘機)는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이는 몸매를 드러낸 코르셋드레스를, 다른 이는 검은 정장을 선택한다. 에르메스 버킨백 혹은 몽블랑 만년필이 영매(靈媒)가 되기도 한다. 대통령의 이름을 새긴 ‘청와대 시계’를 손목 위에 올리는 순간 ‘넘버 투’로 빙의하는 이도 있다. 레이스업 슈즈의 끈을 당겨 묶는 남자의 표정, 하이힐에 숨겨진 빨간색 바닥을 거울로 응시하는 여자의 시선보다 더 영웅적인 것은 없다. 영화 ‘맨 인 블랙’에서 외계인이 벽이나 싱크대 틈새에서 부풀어 올라 존재를 드러내듯 패션은 상대에게 말을 걸고, 마력을 발휘하여, 끝내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도록 하려는 욕망이다. 타인이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게 하는 것,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란 점에서 패션은 정치 그 자체다

내가 “당신의 옷은, 정치적이지 않아요”라는 말을 꺼냈을 때, 사실 마음속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이 만든 옷들이 섹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열정적으로 옷을 만드는 젊은 디자이너 앞에서였다. 아름다운 건축물 같은 옷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 한 그는 높은 제작비 때문에 부자 고객이 많은 동네에 가게를 냈다. 점잖은 고객들은 두툼한 뱃살과 퇴화한 팔 근육을 가릴 수 있는 옷을 주문했다. 그의 컬렉션은 훌륭했지만, 고객들이 꿈꾼 옷은 아니었다. 그는 정체에 빠졌다. 고객들이 원한 건 두려움을 드러낸 옷이 아니라 젊고 예쁜 것들에게 “니네 다 죽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돈의 파워드레싱이었을 거다.

‘패션은 비정치적’이라고 말한 이는 극성맞게 ‘정치’를 하러 다닌 미국의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였다.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와 고소영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알려진 그는 재클린 케네디, 낸시 레이건, 힐러리 클린턴, 부시가(家)의 여성들에 이어 미셸 오바마까지 미국 현대사의 거의 모든 퍼스트레이디와 수많은 여성 정치인에게 자신의 옷을 입혔다. ‘옷 잘 입는 퍼스트레이디를 갖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며 뉴욕타임스에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는 미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대통령부인 전 상서를 싣기도 했다. 그는 유력한 여성이 대중을 감동시키는 옷을 원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가 보기에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는 브로치 하나 정도의 장식적 차이일 뿐, 패션이란 당대의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당파를 초월해 쓰이는 정치적 주술이다.

진로를 고민하던 젊은 디자이너에게 ‘정치적’이길 요구한 건 잘한 일이었을까. 그의 부티크는 유력한 정재계의 여성들을 고객으로 맞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의 옷에선, 입체적인 재단은 무너지고, 소재는 진부해졌다…면 극적이었을 텐데, 그렇진 않다. 고객이 바라는 정치적 욕망들과 상류사회의 고객을 네트워킹하는 정치공학 사이에서 그는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러므로 해피엔딩. 비극은 남들과 다르고 싶은 욕망으로 탈정치화한 쇼퍼홀릭의 사연이다. 유령처럼 쇼핑몰을 떠돌 뿐, 나는 더 이상의 주문을 알지 못한다. 거울아, 거울아.

消波忽溺 쇼퍼홀릭을 비난하면 가끔 물기도 한다.

hold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