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기원-다윈의 딜레마/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박종대 옮김376쪽·1만8000원·플래닛
공작의 화려한 깃털. 저자는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생물들은 다윈 이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환경에 밀착해 적응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그 대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특성에 의해 아름다움과 개성이 발현한다고 본다. 동아일보DB
그러나 독일의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미(美)가 발현된 대표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공작의 화려한 깃털을 그렇게만 설명하면 모순에 도달한다고 지적한다. 암컷의 선택으로 화려하고 긴 깃털이 가능했더라도, 그런 수컷은 생존에 불리한 조건 때문에 금방 무대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공작의 화려하고 긴 꼬리는 생존에 불리한 조직이 아니다. 공작의 몸체보다 훨씬 긴 깃털은 표범이 공작을 덮쳤을 때 긴 꽁지깃만 떼어주고 도망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컷의 화려함은 몸이 비대해져서 생존경쟁에 불리해지는 것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암컷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처럼, 수컷들은 집단적 구애 행위를 하거나 단백질로 화려한 깃털을 생산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적절한 체구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아름다움이 진화의 과정에서 선택받는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는다. 포유류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은 대개 그 종 안에서 가장 크고 강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에도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개체다. 사슴의 경우 18가지 화려한 뿔을 가진 수사슴이 암컷의 선택을 받는다. 힘은 세지만 뿔의 가지수가 홀수여서 비대칭인 사슴은 선택을 받지 못한다. 오리는 화려한 의상으로 먼저 털갈이를 한 수컷이 맨 먼저 짝짓기에 성공한다.
암컷이 선호한 수사슴의 뿔은 갈수록 커진다. 그렇게 우람해진 뿔은 크기만으로 신분의 상징이 될 뿐만 아니라 그런 뿔을 가진 수컷은 아예 싸움에서 면제되기도 한다. 상대가 뿔의 위용에 지레 겁을 먹고 싸움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암컷의 선택으로 야기된 진화다.
미의 발현은 유기체의 복잡성에 따라 그 규모가 다르게 나타난다. 유기체는 구조가 복잡해지면 일반적으로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미생물은 환경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변종이 탄생하지만 풍뎅이 정도로 복잡해지면 그렇게 빨리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하물며 인간은 자신의 ‘자연에 가까운 몸’을 부끄럽게 여길 정도로 자연환경과 멀리 떨어진, 큰 ‘자유’를 가진 존재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체는 자연에 적응하려고 애쓸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려고도 애를 쓴다. 똑같이 땅속에 살지만 두더지, 땅강아지, 개미는 모두 제각각인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생물은 능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날 새로운 가능성도 함께 엿본다는 설명이다.
한발 더 나아가 저자는 ‘환경으로부터 높은 자유도를 획득한 인간이라면 모든 개체가 이상적인 미를 가질 수 있도록 진화할 수 있지도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수렴하게 되면 유전적 다양성이 제한되고 면역체계의 효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질병과 기생충, 병원균은 ‘개성에 기반을 둔 미’를 창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특정 주제들에 대한 답을 지나치게 늦추며 다른 이야기를 많이 삽입하는 바람에 내용을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점이 눈에 거슬린다. ‘수컷이 화려하지 않고 암컷처럼 수수할수록 부화와 양육에 많이 참여한다’라는 사례에서처럼 동물들의 행태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많아 흥미롭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