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마침 북유럽 복지를 돌아보고 온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복지 하면 경제 망한다는 복지망국론, 재정위기론이 얼마나 근거 없는가를 스웨덴에서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지난해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가야 하고 민주당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며 추천한 책도 ‘유러피언 드림’이었다.
2005년 국내 출간된 제러미 리프킨의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말 잘 쓴 책이라고 극찬해 더 유명하다. “이 책을 진보적 관점에서 한국 상황에 적용 가능한지 검토해 보라”고 참모들에게 지시까지 했다. 그가 꿈꿨고 노무현정신 계승자가 강조하는 ‘사람 사는 세상’과 진보정치가 유러피언 드림 속에 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스웨덴 개혁 모르면 진보 아니다
유럽의 재정위기와 유러피언 드림은 무관하다고? 아니다. 리프킨이 “노동윤리와 효율성보다 레저와 심지어 게으름을 중시한다”고 말한 유럽은 PIGS와 프랑스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미국이 부(富)와 성장, 개인의 이기심을 중시하는 반면 유럽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삶의 질,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리프킨이 홈페이지에서 강조한 부분이다. 그러나 붕괴 위기에 처한 유럽연합(EU)을 보면 이 대목도 의심스럽다.
평등과 연대 같은 진보의 가치를 그토록 강조하는데도 북유럽부터 제노포비아(인종혐오)와 극단주의 정당이 출몰하고, 잘사는 북유럽과 못사는 남유럽의 갈등이 심해지며, 불타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차라리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앞으로 나아가려는(進步) 우리 특성과 역사에 더 잘 맞는것 같다.
더구나 손학규는 “스웨덴 복지 담당자를 만나 보니 복지와 성장에는 굴곡이 있지만 복지 안 줄이고 오히려 뒷받침해서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 가는 곳마다 강조하고 있다. 어림없는 소리다.
1990년대 초 경제거품 붕괴로 금융위기가 터지자 집권 사회민주당은 1995∼98년 아동수당과 실업수당 같은 복지수당을 줄여 국내총생산(GDP)의 8%나 세출을 삭감했다. 학교와 병원에 민영화를 도입해 100% 무상교육·무상의료의 전설도 사라졌다. 그러고도 노동과 생산시장 유연화, 세출 상한 재정개혁, 소득비례 연금개혁을 계속했다. 2006년 감세와 복지개혁을 내세워 집권한 보수당은 2010년에도 “복지”를 강조하는 사민당에 “일자리”로 맞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 결과 성장이 복지로 이어진 것이고, 그런 개혁이 없었던 남유럽은 재정위기에 빠졌다는 점을 손학규가 놓쳤다면 안타깝다. 그는 “무작정 좌파를 진보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무작정 복지도 진보라 할 수 없다. 복지는 확대하되 개혁 전이 아닌 개혁 후의 스웨덴처럼 효율적 복지를 해야 하고, 유능한 정부가 성장정책을 이끄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사실까지 외면했다면 리더십을 의심받을 수 있다.
정치권 ‘미친 특권’부터 개혁하라
만일 국민의 삶을 제일로 삼겠다는 정치인이 있다면 국회의원 특권부터 최소한 스웨덴 수준으로 개혁해 진정한 진보임을 입증했으면 좋겠다. 1인당 소득이 우리의 2.5배인 스웨덴의 의원 월급은 우리(수당 상여금 포함해 월 1224만 원)보다 훨씬 적은 5만6000크로나(약 940만 원)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