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만에 만난 남매는 왠지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실종아동의 날인 25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유전자연구소에는 오빠(56세)와 여동생(52세)이 멋쩍게 앉아 있었다. ‘핏줄이 맞다’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보며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세기 동안 서로를 찾아 헤맨 남매가 맞나 싶었다. 부모가 갓 태어난 딸을 보육원에 보내면서 헤어졌다. 오빠는 “며칠 전 여동생이 100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는데 나도 치킨 배달로 사는 형편이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여동생은 “평생 천대받으며 살았는데 친오빠에게 의지하고 싶었다”고 하소연했다. 힘겨운 상봉은 또 다른 상처의 시작이었다.
▷그날 연구소에는 검사 결과를 보러 오지 않는 언니를 7시간째 기다리는 입양인 김모 씨(25)도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자란 김 씨가 가족을 찾으러 한국에 온 건 이번이 세 번째.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어 지난해 국내 유명 사립대로 유학까지 왔다. 경찰과 함께 200여 가구를 수소문해 언니로 추정되는 인물을 찾았고 사정사정해 함께 유전자 검사를 했다. ‘친언니가 맞다’는 꿈같은 통보를 받고도 김 씨는 끝내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 언니는 기자에게 “부모님이 한사코 딸을 입양 보낸 적이 없다고 하니 섣불리 동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라며 난처해했다.
▷영화 ‘건축학 개론’ 흥행 이후 첫사랑을 찾아주는 스마트폰 앱 가입자가 하루 1만 명씩 는다. 부모를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 뿌리를 찾으려는 본능은 오죽할까. 하지만 어긋난 인연을 잇는 여정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1995년부터 10년간 7만6000여 명의 해외 입양인이 생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만남이 이뤄진 건 2.7%(2113명)에 불과했다.
▷한국 친부모에게 두 번 버림을 받은 김 씨를 위로한 건 네덜란드 양부모였다. 김 씨는 한달음에 날아온 양부모와 함께 전라도의 한 산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다. 한국인 입양아 출신으로 새 프랑스 정부의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은 “한국 가족을 찾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나를 사랑해 준 프랑스 가족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했다. 성공한 입양아를 한국계라며 자랑스러워할 근거는 어디에 있는 걸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우리는 지난해에도 916명의 아이를 ‘수출’했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