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학과시험은 영어이긴 했지만 내용이 까다롭지 않았고, 도로주행 시험의 경우 감독관의 방향 지시에 따라 차분하게 운전했더니 처음 가보는 시험코스인데도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운전면허 시험보다 더 쉽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한국 운전면허 문제집을 공수해 와서 양국의 시험문제를 비교해 봤습니다. 역시 한국의 문제들이 외워야 할 내용이나 틀리기 쉬운 함정이 많았습니다. 미국에는 없는 동영상 시험문제까지 있어 만만치가 않더군요. 게다가 경찰청은 11월부터 도로주행 시험 코스를 10종류 이상으로 늘려서 2, 3개 코스만 숙달하면 되는 지금의 시스템을 보완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한국의 운전자들이 미국 운전자들보다 평균 운전실력이나 교통법규 준수율이 더 높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운전면허 제도는 운전자를 오랜 시간 ‘숙성’해 도로에 내보내는 반면 한국은 ‘속성’으로 운전자를 양산(量産)하는 것에 상당 부분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또 시험에 떨어질 경우 학과는 1주일, 도로주행은 2주일이 지나야 재응시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공부하라는 뜻이죠. 한국은 학과 1일, 주행은 3일이면 다시 응시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면허시험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조기 운전교육이 이뤄지도록 하고, 그 과정을 지루할 정도로 길게 만들어서 천천히 운전을 익히도록 해놓은 셈입니다. 학과시험의 경우도 요점정리 문제풀이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국(DMV) 홈페이지에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운전자 교본을 무료로 내려받아 운전과 교통에 대해 이해를 하고 시험을 보게 합니다.
운전자 교본은 도로라는 공공재를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공유해야 한다는 기본 내용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양보와 배려와 흐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도로상의 장애물처럼 여겨지는 트럭은 사실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인식시켜 주기도 하고, 다른 운전자의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운전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도 합니다. 우리도 조금 둘러가고 불편하더라도 숙성된 드라이버를 많이 만드는 운전면허제도를 개발한다면 매년 5000명이 넘는 교통사고 사망자와 30조 원에 이르는 교통혼잡비용을 제법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 노스헤이번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