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자체가 모든 삶의 기준이 된다니…
하지만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가 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최고 목표는 ‘정규직’이 됐다. 비정규직의 조건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뜻이겠지만, 그렇다고 정규직 자체가 모든 삶의 기준이 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몹시 불편하다. 어떤 일, 어떤 활동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정규직 그 자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직업이란 단지 경제 활동일 뿐 아니라 생명의 정기를 사회적으로 표현하고 순환하는 행위다. 따라서 단순히 돈과 지위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가치들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런데 일의 종류나 성격은 불문하고 무작정 정규직이라니. 이건 그냥 “비정규직은 죽어도 싫어요”라는 절규에 가깝다. 이게 바로 ‘전도망상(顚倒妄想)’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노동의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누구도 남의 부림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도 ‘정규직 타령’을 하다보니 이 원초적 본능을 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더 ‘야무진’ 이들은 의사 변호사 교사 등 소위 ‘사자(字)’ 들어가는 직업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 담긴 욕망은 더 가관이다. 정규직은 언제 잘릴지 모르니 평생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겠다는 것이다.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직업이고 변호사는 법을 집행하는 직업이며 교사는 사람을 키우는 직업이다. 한마디로 대중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정을 위해서 그걸 선택한다고? 대체 얼마나 불안하면 이런 지경에 이르는가?
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길 위의 인생’이다. 어떤 조직과 지위의 보장도 없지만 그렇기에 매순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욕망과 능력의 일치! 그래서 자유롭다. 하여 난 늘 궁금하다. 정규직은 과연 자신 안에 이런 열망이 들끓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