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20세기 전반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광복 이후 줄곧 일본을 미워해 온 한국이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런 두 나라가 이런 큰 이벤트를 함께 개최하다니…. 이런 광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터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결정으로 공동개최가 결정된 것은 이보다 꼭 6년 전인 1996년 5월 31일이었다. 그 다음 날 나는 아사히신문에 이렇게 썼다. “이것을 타협의 산물로만 치부하는 것은 과소평가다. 금세기를 온통 얼룩지게 한 두 나라의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생각하면 21세기의 문턱에서 실현된 공동개최는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라고.
10년전 양국 ‘감동의 드라마’ 연출
이유형 씨는 젊은 시절 축구선수로 식민지배의 애통함을 느꼈고, 광복 후 한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서 일본을 이기고 처음으로 월드컵 진출을 이룬 전설적 인물이다. 나는 91세가 된 그를 개회식 직전에 서울에서 만나 양국의 오랜 인연에 관해 들었다.
새삼 2002 월드컵이 만들어낸 감동의 드라마가 떠오른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예선 리그를 통과해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고, 본선 첫 경기에서 일본은 패했지만 라이벌 한국이 쾌승 행진을 이어가자 이에 놀란 많은 일본인이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당시 일본의 응원 영상이 전해지자 이번에는 많은 한국인을 놀라게 했다. 이후 두 나라 국민 사이에 극적인 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 모두 월드컵이 만들어낸 계기였다.
월드컵 이후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이를 시작으로 ‘대장금’ 등 한류 드라마가 연이어 히트했다. 한국의 케이팝(K-pop) 그룹이 속속 일본에 상륙해 일본 젊은이의 마음을 빼앗았다. 한국에서도 일본 대중문화가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게 됐다. 관광객의 왕래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최근 10년간 두 나라 사이의 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낮아졌다. 월드컵이 커다란 공헌을 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큰 오산도 있었다. 정치 관계를 보면 ‘역사 극복’이라는 염원과는 반대로 오히려 민족주의 감정이 높아졌고 대립이 두드러졌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명칭) 문제나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됐음에도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러나 월드컵 직후 이 같은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고 말았다. 한국 사람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계속해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시마네(島根) 현이 조례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일본 중고교 교과서가 다케시마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기록한 것에 대해서도 일본이 한국을 자극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본 측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이즈미 총리가 과거를 사죄하는 발언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지 않았던가. 고이즈미 이후의 총리들은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았다. 다케시마를 굳건하게 실효 지배하고 있는 한국이 왜 보란 듯이 영유권을 강조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일까. 일본 시각에서는 한국의 이런 태도가 도발적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 등 상대 입장 배려해야
서로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다면 해결은 멀어진다. 위안부 문제도, FTA도 자기주장만으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 공동개최의 교훈은 “불만을 참고 견디고 서로 협력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론 월드컵 유치전 당시 소모적인 경쟁을 그만두고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자고 주장했던 사람은 일본보다 한국에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주장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현명한 지혜였다. 그 지혜를 이제 양국이 다시 기억해 응용하면 두 나라의 미래는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