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인테리어부터 걷어내라
주지하듯이 병은 일상의 표현이다. 암과 우울증이 이렇게 많다는 건 그만큼 일상이 뭉치고 막힌다는 뜻인데, 과연 그렇다. 주거 공간은 특히 그러하다. 지난 수십 년간 사람들의 꿈은 ‘내 집 마련’이었다. 시작은 소박했으나 결국엔 ‘탐욕의 축’이 되고 말았다. 하여 이제 ‘내 집’은 오순도순 사는 곳이 아니라 자산의 증식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는(buying) 것으로! 그 결과 전국 곳곳이 아파트 천국이 됐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아파트는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깝다.
먼저 사방이 꽉 막힌 형태라 이웃과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친지들이 편하게 드나들기도 쉽지 않다. 결국 거주자는 3인 아니면 4인 가족이 전부다. 게다가 이 가족들조차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럼 그 넓은 공간은 대체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다름 아닌 인테리어다. 인테리어야말로 아파트의 ‘진정한’ 주인이다.
가구는 가구를 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또 산다. 쓰이지도 않은 채 어딘가를 꽉 채우고 있는 물건, 그것이 곧 담음이자 종양이다. 집 안 공기의 순환을 막고, 정서의 흐름을 막고, 대화의 창구를 막고. 이러고 몸이 아프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만약 내가 먹은 음식이 고스란히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따라서 밝고 명랑하게 살고 싶다면 일단 인테리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적으로 거실에 소파만 없어도 숨쉬기가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가구와 물건을 줄이면 두 가지 길이 열린다. 집이 한결 넓어진다. 그러면 이웃들과 친지들을 초대하고 싶어질 것이다. 사람과의 소통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또 하나, 집이 더는 클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할 이유도, 집을 위해 엄청난 빚을 져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또 있는가?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