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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보라색 미니스커트’ 김재연

입력 | 2012-06-01 03:00:00


아내로부터 “날 생각하면 무지개색 중에 무슨 색이 떠올라”라는 문자가 왔다. ‘바빠 죽겠는데 웬 뜬금없는 질문이야’라고 속으로 불평하며 별 생각없이 “빨강”이라는 답신을 보냈다. 잠시 뒤 싸한 분위기 감도는 문자가 도착했다. “한번 더 기회 줄테니 다시 생각해봐.” 아내의 질문은 요새 기혼여성들이 남편들에게 유행처럼 물어보는 것이다. 빨강은 그저 마누라, 주황은 애인 같은, 노랑은 동생 같은, 초록은 친구 같은, 파랑은 편안한, 남색은 지적인, 보라는 섹시한 마누라를 의미한단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가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재킷뿐이었다면 그저 그랬을 텐데 검은 재킷과 보라색 미니스커트의 세련된 매치가 눈길을 끌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라면 절대 그렇게 입지 못했을 것이다. 87학번인 이 전 대표는 ‘진보의 붉은 장미’로 불리긴 하지만 어딘지 1980년대 운동권 여학생 출신의 칙칙함이 남아있다. 99학번인 김 의원에게는 그런 게 없다. 과연 신세대 메트로폴리탄 주사파라고나 할까.

▷보라색은 통진당의 상징색이다. 그래서 김 의원이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것이다. 본래 진보의 상징색은 빨강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응원 열기에 빨강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때 한국 사회의 빨강에 대한 금기가 깨졌다느니 어쩌니 했다. 그래도 그해 대선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와 열린우리당은 감히 빨강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노랑이었고 지금 민주통합당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상징색은 주황이었다. 빨강을 써야 할 정당들은 빨강을 쓰지 못하는데 세상이 바뀌어 보수인 새누리당이 빨강을 상징색으로 쓴다.

▷빨강은 열정 정열을 나타낸다. 그런데 기혼여성들이 남편들로부터 닮았다는 소리를 가장 듣기 싫어하는 색이 빨강이다. ‘빨강은 그저 마누라’라나. 어쩌다 빨강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지만 새누리당이 빨강을 쓸 정도니 빨강이 진부해진 것은 틀림없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부산대 강연에서 색깔론을 비판했다. 그러나 요새 빨갱이는 빨강을 쓰지 않는다. 빨강과 파랑이 섞인 보라나, 빨강과 노랑이 섞인 주황을 쓴다. 안 교수도 보라나 주황 속에 숨겨진 빨강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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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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