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거의 모든 병’ 치유… 잡념도 사라져
근대 이전 귀족들은 주로 칠정상(七情傷)을, 평민들은 노곤상(勞困傷)을 많이 앓았다. “귀한 사람은 겉모습이 즐거워 보여도 마음은 힘이 들고, 천한 사람은 마음이 한가해도 겉모습은 힘들어 보인다.”(동의보감) 요컨대 몸을 쓰면 마음이 쉬고, 몸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바쁘다. 이에 비춘다면 우리 시대는 그야말로 ‘칠정상의 시대’다. 거의 모든 직업이 예전의 귀족만큼도 몸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망상이 그치질 않는다. 망상은 잡념이고, 잡념은 불면증 편집증 강박증 등 온갖 병증을 불러온다.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걷기’다. 만병통치약은 없다지만 걷기는 놀랍게도 ‘거의 모든 병’을 치유해준다. 그런 점에서 ‘걸음아, 날 살려라!’는 격언은 딱 우리 시대를 위한 것이다.
걸음이 지닌 경제적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과 운동조차 헬스클럽이나 피트니스센터 등을 통해 서비스를 받으려 한다. 그런 곳은 당연히 돈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의 활동과 분리되어 있다. 이런 식의 운동은 양생적 차원에서 보면 아주 저급한 수준에 속한다. 생명은 전적으로 자율성에 기반한다. 자신 안에 있는 힘을 스스로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돈과 서비스가 개입하면 이 자율성이 위축돼 버린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가장 먼저 자가용을 버리면 된다. 차는 생계 수단이 아닌 한, 모두 잉여다. 또 우리나라만큼 대중교통이 발달된 곳이 어디 있는가. 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터까지 걷는 것이다. 점심 먹은 후에도, 또 귀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몸은 다소 힘들지만 마음은 그때 비로소 쉬게 된다. 마음이 쉬면 잡념 아닌 성찰이 시작되고, 또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과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게 바로 정신줄을 잡았을 때 삶의 모습이다.
일석삼조, 아니 사조! 그러니 차를 굴리는 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안달복달하지 말고, 일단 걸어라! 걸으면 돈이, 아니 복이 온다!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