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개성파 여배우 아키요시 구미코의 한글-한국 사랑
한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일본의 중견 여배우 아키요시 구미코는 “1992년 한일 합작드라마에서 재일교포 역을 연기한 뒤 한동안 일본 내 한국식당에서 환대를 받았다”며 웃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왜 한국어를 배우나.
“엄마가 ‘겨울소나타’를 함께 보자고 강권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남자는 여자와 함께 울어준다. 일본도 옛날에는 그랬다. 1970년대부터 야쿠자 영화가 주를 이루면서 여자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는 시대가 됐다. 요즘은 여자가 앞에 가고, 남자가 여자의 뒷모습을 보는 시대가 됐지만…. 엄마는 한국 드라마 덕분에 행복하게 돌아가셨다. 5년 반 전이다. 한국 영화 ‘크로싱’을 보고 영화나 드라마 보고 운 적이 없던 내가 울었다. 사상이 아니라 가족 문제를 통해 지금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한국 사람과 만나 그런 얘기들을 했더니 한국어를 한 번 배워보라고 하더라. 나는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곧 해버리는 성격이다.”
“기호로만 보이던 한글을 불과 한 달여 만에 읽고 쓰게 됐다. 이건 기적이다. 말을 배우면서 그 뒤의 역사와 문화도 보이게 된다. ‘문이 열린다’는 생각이다. 한글은 생각하는 방식이 알파벳식이고 디지털식이다. 미래적인 글로도 생각된다. 한국 사람들이 최근 세계 가운데로 뻗어나가는 것은 그런 생각 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배우로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생각은….
“요즘 NHK에서 방송하고 있는 ‘이산’을 무척 좋아한다. ‘이산’을 보면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를 모두 알 수 있다. 예컨대 걸어서 외국(청나라)에 간다는 게 매우 신선하다. 일본은 그런 발상이 없다. 정조의 호위무사인 박대수가 출세한 뒤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수야’ 하고 부르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무너졌다. 작위적이 아닌 순간에 인간의 참 아름다움이 확 나타난 것이다. 한국 드라마는 ‘맨얼굴’의 인간을 잘 그려낸다. 원수 같던 사람이 어느 날 친구가 된다. 처음엔 납득하기 어렵지만 결국 ‘인간은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며 수긍하게 된다. 일본 드라마는 그런 게 없다. 시마구니(島國·섬나라)여서 희로애락을 표현하지 않는 게 미덕이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나.
―일본 내 일부의 혐한(嫌韓) 분위기에 대한 생각은….
“여자는 의외로 자유롭다. 다른 나라 말도 금방 배운다. 남자는 정체성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교류를 하면서도 정체성에 자신을 가지는 게 어른이다. 좁은 마음에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유치하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일 합작 영화에 출연할 계획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내 이름은 구미코다. 한국말로 ‘구미가 당기는 아이’라고 한다. 호기심이 많고 한국과의 관계에도 구미가 당긴다.”
:: 아키요시 구미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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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