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엄마-아이 음악교실
다문화가정 엄마들이 지난달 23일 바이올린을 켜는 아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뒤쪽 아이를 안고 있는 이가 사카모토 씨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다문화가족지원센터. 난생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캄보디아 엄마 치에찬탑 씨(26)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다음 달 말 출산 예정인 그는 만삭의 몸으로 딸 진영이(5)와 두 달 넘게 종이상자에 자를 붙여 만든 ‘박스 바이올린’으로 자세를 익혔다. “자세가 좋다”는 선생님의 칭찬에 엄마는 딸아이와 시어머니에게 환한 미소를 보냈다. “집에서 진영이 선생님 역할을 하면서 연습 많이 했어요. 어머님도 좋아하고. 애 낳고 바로 나올 거예요. 잘 배워서 나중에 공연해야 하니까요.”
일본인 주부 사카모토 히로미 씨(35)는 4남매의 엄마다. 다문화센터에서 첼로를 배우는 열 살배기 큰딸부터 20개월 된 막내까지. 그는 막내딸을 안고 시온(7) 노아(5) 두 형제를 도와가며 바이올린 율동을 따라했다. 쉽지 않았을 법했지만 표정에서는 흥겨움이 묻어났다. “아이가 둘이면 힘들지만 셋이나 넷은 그렇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아이들의 즐거운 배움터인 유아 교실에서 엄마들은 서로 스스럼없는 친구가 된다. 필리핀 엄마 연이 바그타수스 씨(36)와 이 그레이스 씨(29)는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그동안 남편과 영어로 소통해 한국말이 서툴다던 바그타수스 씨는 다문화센터에서 처음 만난 그레이스 씨의 통역을 돕고 수업내용을 조근조근 알려주기도 한다. 그는 바이올린을 보다 잘 배우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한국말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음악선생님이 화이트보드에 쓴 내용을 받아쓰는 모습에선 일곱 살 아들에 대한 엄마의 교육열이 묻어났다. 그레이스 씨는 바이올린을 여섯 살 큰딸과 즐겁게 배우며 한국말을 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자신과 딸아이에 대한 한국인 남편의 관심은 그레이스 씨의 든든한 힘이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중국 엄마 천펑샤 씨(36)는 일주일에 두 번 바이올린 교실에 짬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딸 가영이(5)를 위해서라면 음악교실이 우선이란다. 중국말을 잘하는 딸아이가 외할머니와 ‘도레미파’를 하고 바이올린 자세를 뽐내는 걸 볼 때면 음악교실이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1년만 하고 그만두면 아이들은 금방 잊어버리잖아요. 커서도 잘할 수 있도록 계속하면 좋겠어요. 저도 열심히 할 거예요.”
바이올린을 배우는 엄마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문화센터에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생활 적응과 한국말 교육을 돕는 팜튀티영 씨(36). 그는 처음엔 별 관심 없던 주위 엄마들이 바이올린을 배우는 자신과 아이들을 많이 부러워한단다. 두 딸과 함께 처음 잡아 본 바이올린에 기대가 크다. 팜튀티영 씨는 누가 잘하는지 자랑도 하며 차츰 실력을 키울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위해 바이올린 교실에서 만난 엄마들은 이제 서로 즐겁게 웃으며 배우는 한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