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장
1468년 한글이 반포된 지 22년밖에 안 되던 해. 김종직(1431∼1492)의 어머니 밀양 박씨와 아내 하산(창녕) 조씨가 서울에서 교리 벼슬을 하던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합천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한글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듯 두 여인의 편지는 이두문으로 쓰여 있다. 김종직의 아내 조 씨는 남편을 향해 “밤낮으로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하고 있사오며”라고 말하며 그리워할 연(戀) 자를 세 번씩이나 되풀이했다. 이어서 “저는 지금 전에 앓던 병이 낫지 않고 배 속에 이물질이 생겨 형체를 이루고 소리가 납니다. 배가 부어올라 고통이 날이 가도 줄지 않으니 죽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한 번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안승준 번역)라고 했다. 그리운 남편에게 병 증세와 그 고통을 호소하면서 만나러 와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아내가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태도가 돋보이는 편지다.
수백년 전 애절한 사연에 감동
남편을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아내의 마음이 담긴 편지도 있다. 고성 이씨 17세손 이응태(1556∼1586)가 서른 나이에 갑자기 죽자 그의 아내가 그 슬픔을 못 이겨 고인의 관 속에 편지를 써 넣었다. 이 편지는 그 사연의 애절함과 지극히 간절한 표현으로 가슴에 사무치는 뛰어난 명문장이어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해 놓고서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셨습니까. 둘이 한자리에 누워서 늘 제가 당신에게 이르기를 ‘이 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 같을까요?’ 하며 당신에게 사랑을 속삭이곤 하였지요”라는 편지의 내용은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 준다. 요즘도 금실 좋은 부부 사이에 나눌 만한 달콤한 말이다. 이 편지에 그려진 부부간의 절절한 애정 표현은 현대인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학봉 김성일은 경상우도 감사로 임명돼 싸움터에 나갔다. 전쟁 와중에 김성일은 안동 납실에 있는 아내 권씨에게 한 장의 한글 편지를 보냈다. “요즘 같은 추위에 어찌 계시오. 가장 생각하고 생각하오. 살아서 서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하지 못하오. 나를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 유언장 같은 이 편지에는 부부간의 따뜻한 정리(情理)가 은근히 그려져 있다. ‘가장 생각하오’라는 말에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배어 있고,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라는 말에는 근엄한 선비의 아내 사랑하는 은근한 마음씨가 촉촉하게 느껴진다. 이 편지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김성일은 전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17세기 초기에 홍의장군 곽재우의 조카인 곽주가 아내 진주 하씨에게 쓴 ‘현풍곽씨언간’에는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마음이 구구절절 묘사돼 있다. 출산을 위해 친정에 간 아내에게 꿀과 참기름을 보내고, 염소 중탕을 지어 가서 직접 달여 먹이겠다는 사연도 있다. 후처로 들어와 불편함을 겪는 하 씨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삼 년을 눈을 감고 귀를 재우고 견디소. 남들의 입방아 찧는 소리는 늘 듣는 것이니 삼 년을 노래 듣듯이 듣고 견디소”라 하면서 아내를 다독이고 있다.
부부 사이가 어찌 좋기만 하겠는가? 16세기 후기에 쓰인 ‘순천김씨언간’에는 남편이 시앗을 본 후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나타난다. 소주를 독하게 먹고 죽을까도 생각한다는 신세 한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처럼 부부간에 주고받은 한글 편지에는 가정의 온갖 일이 그려져 있다. 농사, 혼사, 제사, 손님 접대 등의 가정사를 부부가 서로 협력해 처리했다. 남편 부재 시에는 아내가 제사를 주관하고 노복을 관리하는 등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부부의 서로 배려하는 마음과 은근하지만 심금을 깊이 울리는 사랑의 지혜를 한글 편지에서 배울 수 있다. 수백 년 전의 한글 편지가 여전히 현대인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 사연의 진실성과 시공을 초월한 인간 삶의 보편성에 기인한 것이리라.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