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부랴부랴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방에서 농성 중이었다. 아내가 대변인 노릇을 했다. “말하기 싫대. 혼자 있겠다는데?”
부부는 아이의 최근 행동을 분석한 결과, ‘반항기’에 접어들었음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반항은 ‘응징’을 단골손님처럼 불러들였다. 혼이 나면서도 그들이 정해 놓은 규칙을 수긍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항과 응징의 긴장이 차츰 이완되면서, 유난했던 반항기가 막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다. 그토록 싫어했던 자리에, 어느새 자신이 서 있게 된 것이다. 반항기 아들을 둔 아빠, 즉 기성세대의 권위와 억압의 중심축.
남자는 아이 방의 닫힌 문을 보며 오랫동안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생각. 남자가 성숙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것이 혹시 반항기가 아닐까. 친구들을 떠올려 보니까 그들 역시 그런 반항기를 거쳐 어른이 된 것 같다.
어른이란 의미는 자기 삶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주도한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반항기란 그동안의 삶을 좌지우지해 온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거칠지만 조심스러운 어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할수록 정말 그랬다. 친구 중에는 부모의 꼭두각시처럼 지내다가 이 나이가 되어서야 늦은 반항을 하는 녀석도 있다. 늦깎이 어른이 되려는 것이다.
남자는 이튿날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아들에게 물었다.
“뭘 생각했어? 뭐가 되려고 유난을 떠는 거야?”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아빠는 걱정 안 해도 돼.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가 최소한 아빠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라고 했거든.”
남자는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어쨌거나 아들이 아빠보다 나은 삶을 누려야 발전이니까. 남자는 기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