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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카페]강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

입력 | 2012-06-02 03:00:00

◇맨틀 ‘시체를 대령하라’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은 영국 문화계가 즐겨 쓰는 소재다. 수많은 책과 영화들이 그들의 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했고, 할리우드도 ‘튜더스’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제작했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힐러리 맨틀의 ‘울프 홀’이 있다. 670쪽이 넘는 이 책은 맨부커 역사상 가장 인기가 높았던 책으로 꼽힌다. 그가 3년간의 침묵을 깨고 5월에 내놓은 신작 ‘시체를 대령하라(Bring Up the Bodies)’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예견된 바였다.

이 책은 ‘울프 홀’의 후속작이자 그가 예정한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편에서 마침내 헨리 8세의 사랑을 차지하고 왕비가 된 앤 볼레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헨리 8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이 주로 헨리 8세 혹은 앤 볼레인인 데 비해 맨틀의 3부작은 제1대 에식스 백작인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제1대 백작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크롬웰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장관의 자리에 오르고, 그에 따라 귀족의 칭호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울프 홀’에서 크롬웰은 앤 볼레인을 도와 헨리 8세가 첫 부인과 이혼하고 바티칸과 절연한 후 영국 성공회를 만들도록 하는 데 큰 공헌을 한다. 대장장이의 아들에 불과한 크롬웰이 어떻게 상인으로 성공을 거두고 그 이후 앤 볼레인과 결탁해 그 자신은 신분 상승을, 앤 볼레인은 왕비의 꿈을 이루게 만드는지가 ‘울프 홀’의 핵심이다. 후속작은 원하던 바를 얻은 두 사람의 동맹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이 영리한 두 남녀의 두뇌 싸움의 승자가 과연 누구인지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결국은 조금 더 ‘영리하게 처신한’ 크롬웰이 승리하고 앤 볼레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2000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던 마거릿 애투드는 “맨틀의 문학적 창조성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의 글솜씨는 여전히 능숙하고 노련하다”고 호평했다. 사실 크롬웰의 모습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아슬아슬한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의 균형,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모습, 한마디 잘못한 말로 목이 달아나는 상황도 그렇다.

2008년의 경제 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 한파’가 다시 찾아왔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영국 정부에 대해 영국 국민들은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크롬웰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과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가진 정치가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고로 영국 내전 당시 공화정을 수립하는 올리버 크롬웰은 이 토머스 크롬웰의 누이인 캐서린 크롬웰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이다.

런던=안주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