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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1930년대 청춘들도 경제적 이유로 결혼 포기… 놀랍도록 닮았네

입력 | 2012-06-02 03:00:00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김경일 지음/480쪽·2만8000원·푸른역사




“행복한 결혼보다 불행한 결혼이 많다는 점에서 독신 생활을 주장하는 건 당연해요. 여성의 경우 더욱 그렇죠.” “혼자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 아내까지 얻어서는 생활할 도리가 없다 보니 젊은 남자들도 결혼하지 않는 겁니다.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큰 이유죠.”

1933년 12월 잡지 ‘삼천리’가 개최한 ‘만혼타개좌담회’에서 나혜석(1896∼1948)과 이광수(1892∼1950)가 한 말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젊은이들은 근대적 개인주의 사조의 유입과 여성의 자의식 확산, 경제적 궁핍, 민족적 시련을 경험하면서 가족과 결혼 제도에 대한 극심한 가치관 혼란을 겪었다. 경제공황으로 실업과 빈곤이 심각했던 1930년대엔 만혼 풍조와 결혼 기피가 사회 현상으로 떠올랐다. 이에 사회 저명인사들이 참여하는 ‘만혼을 타개하자’는 내용의 좌담회까지 열게 된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로 한국의 근대 사회를 주로 연구해온 저자는 봉건과 근대의 가족 형태가 섞이기 시작한 1920∼30년대 가족과 결혼 제도에 주목했다. 1부에서는 결혼 제도를 둘러싼 전통과 근대의 대립 양상을, 2부에선 근대 가족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 여성이 차지한 위치를 소개했다. 3부는 급속도로 늘어난 이 시기 이혼의 추이와 성격, 4부에선 별거와 독신, 우애결혼 등 대안 가족의 이념과 형태가 등장한다. 특히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고 서로 원하면 이혼할 수 있다’는, 지금 봐도 파격적인 ‘우애결혼’이 1930년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학술서이지만 당시 신문과 잡지 등 문헌 자료를 많이 인용해 쉽게 읽힌다. 아버지가 혼처를 구하러 간 사이 평소 사귀던 남성과 결혼한 딸, 어린 나이에 사랑 없이 결혼한 후 남편을 살해한 여성 등 실제로 있었던 사연들은 하나하나가 드라마틱하다. 식민지 조선의 청춘 남녀들과 2012년의 ‘3포 세대(경제적 이유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는 놀랍도록 닮았다. 10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국의 가족과 결혼 제도,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