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교수 제공
광고 사무원 고지 광고(매일신보 1912년 10월 17일)를 보자. 오른쪽에 ‘사무원 황인성’이라는 헤드라인을 쓰고, “금회(今回·이번에) 우인(右人)으로 하야곰(하여금) 광고 취급 사무에 종사케 하오니 첨언(僉彦·모든 선비)은 조량(照亮·살펴 헤아림)하시와 일층 애고(愛顧·사랑하여 돌봄)하심을 위망(爲望·바람)”한다는 보디카피를 덧붙였다. 이 광고에 이어 “자래(自來) 한성광고사(漢城廣告舍) 이범찬(李範贊) 씨의게(에게) 광고 취급을 위탁하얏거니와 자금(自今) 이후로 동인(同人)은 관계가 무(無)하게 되얏고 갱(更·다시)히 사무원 황인성 씨로 광고 취급에 종사케 하얏사오니 첨언은 조량하시압”(매일신보 1912년 10월 29일)이라는 광고가 나갔다.
한성광고사는 1910년 7월경부터 영업을 시작한 한국 최초의 광고회사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매일신보사에서 한성광고사 이범찬에게 광고 취급을 위탁했지만 나중에 계약을 해지하고 매일신보 내에 광고 사무원 황인성을 임명했다는 것. 황인성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광고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