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파리특파원
취임식에 가족과 친척을 초대하지 않았던 그는 발레리 트리르바일레 여사와 살던 파리 15구의 집을 계속 쓰겠다는 뜻을 밝히는가 하면 행사에 갈 때마다 난데없이 행인들과 악수를 하고 대화를 하는 일이 잦아 경호팀을 당황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난달 23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특별정상회의 때는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졌다. 유세 때 “대통령이 되면 가까운 곳은 열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실제 지킨 것. 파리 북역에 갑자기 경호원이 깔리면서 시민이 놀란 건 물론이고 같은 열차를 탄 승객들이 혼란을 겪었다. 문제는 정상회의가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시간이 늦어져 파리로 오는 기차가 끊긴 것. 결국 한밤에 대통령과 장관 등 30여 명의 VIP를 태우고 돌아오기 위해 관용차 8대가 부랴부랴 동원됐다.
한국계 입양인 플뢰르 펠르랭 씨(39)가 ‘담당장관(Ministre d´el´egu´ee)’이 된 1기 내각도 흥미롭다. 장관 34명 중 남녀가 17명씩으로 사상 첫 남녀평등 내각이라는 별칭도 붙었는데 펠르랭 장관보다 어린 여성이 3명이나 있다.
정부대변인 나자트 발로벨카셈 여성인권장관은 1977년생으로 35세다. 실비아 피넬 통상·관광장관은 발로벨카셈 장관보다 생일이 한 달 빠르다. 국무회의 첫날 청바지를 입어 논란이 된 주택장관 세실 뒤플로 녹색당 대표는 37세다. 오렐리 필리페티 문화·통신장관은 펠르랭 씨와 동갑이다. 한국이라면 30대 여성들이 장관이 되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프랑스는 고위직도 남녀가 평등하고 여성 인재풀이 훨씬 많을까. 프랑스에서 정치권은 가장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곳이다. 사회당 거물이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 총재의 뉴욕 호텔 여종업원 성폭행 의혹 사건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면 경찰과 내무부가 비밀리에 처리하고 덮어버렸을 것이라는 게 언론들의 평가다. 현재 하원 577석 중 여성 의원은 107명(18.5%)으로 사상 최고이다. 여성 의원의 비율이 처음 10%를 넘은 것은 1997년 총선(10.9%·63석)으로 그전까지는 6.1%(35명·1993년 총선)가 가장 높아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여성 정치학 교수가 나온 게 불과 30년도 안 된 1986년이다.
리베라시옹지는 최근 “올랑드 내각의 34개 부처 중 22개 부처에서 핵심 자리인 기획실의 보좌관은 100% 남성이 임명됐다”며 “기획실은 남녀동수 원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백인 남성 카스트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17명의 여성장관은 ‘쇼윈도 장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종훈 파리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