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자살도시 낙인찍힐라”… 대구의 한숨

입력 | 2012-06-05 03:00:00

“베르테르효과 아니냐” 우려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구시교육청의 한 간부는 4일 잇따른 대구 중고교생의 자살에 대해 “백약이 무효”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교육계가 계속되는 학생들의 자살로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12월 대구 D중학교 2학년 권모 군(당시 14세)의 자살 이후 내놓은 다양한 예방책도 7명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 특히 괴롭힘을 당한 내용을 유서로 남기고 투신하는 등 권 군 자살사건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 ‘베르테르 효과(모방자살)’가 현실화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학교 현장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숨진 김 군의 같은 반 친구 이모 군(16)은 “며칠 전까지 함께 놀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감은 “김 군의 같은 반 학생을 상대로 심리검사를 했는데 불안감을 호소하는 학생이 많아 집중관리에 나섰다”고 밝혔다.

권 군이 다녔던 D중학교도 좌불안석이다. 한 교사는 “대구에 학생자살 사건이 생길 때마다 고위험군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겁부터 난다”고 털어놨다. 이 학교는 자살 주원인으로 꼽히는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지난달부터 교실 앞 복도에 폐쇄회로(CC)TV까지 달았다.

“유서 쓰고 죽겠다”고 내뱉는 학생도 눈에 띄게 늘었다. 대구 서구 K중학교 1학년 한 학생(13)은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다가도 ‘까불면 네가 괴롭혔다는 유서 쓰고 죽어버린다’는 말을 농담처럼 한다”고 했다. D초교 김모 교사(34·여)는 “학생 상담 건수도 최근 부쩍 늘었다. 이러다 ‘대구=청소년 자살도시’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한편 대구 수성경찰서는 이날 “김 군의 메모에 가해학생으로 나온 학생이 김 군 폭행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심리상태가 불안해 자세한 조사는 안정을 취한 뒤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가해학생이 자해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확인 결과 가해학생의 부모가 “‘친구가 죽었다. 나도 죽고 싶다’고 말하던 아들이 아침에 부엌에 있던 칼을 바라보고 있어 자해할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 와전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김 군과 가해학생은 자살 당일 대구 수성구 지산동 S고교 운동장에서 1시간 20분 동안 축구를 한 뒤 헤어졌다. 또 김 군의 부검 결과 추락사로 확인돼 김 군이 투신자살한 당일 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숨진 김 군의 아버지(44)는 “학교생활 스트레스를 풀라고 허락한 축구가 오히려 아이 자살의 빌미가 됐다”며 “아들의 원혼을 달랠 수 있게 자살 원인을 꼭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6일이 발인이지만 아들을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된 아버지는 장지를 정하지 못한 채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구=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