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다리 절단 팡정 씨의 ‘톈안먼’ 후야오방 前총서기 사망이 발단… 추모 대자보→민주화 요구 이어져 軍, 광장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
6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 사이 탱크를 앞세운 4만 명의 군 부대가 마침내 시내로 진입해 톈안먼 광장에 있던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했다. 당시 대학 육상선수였던 팡정(方政) 씨는 “(톈안먼 인근) 창안(長安)가에서 시위를 하던 중 한 여학생이 탱크가 몰려오는 길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인도로 밀쳐냈지만 나는 미처 탱크를 피하지 못했다”며 “의식을 잃기 전 다리가 잘리고 뼈가 드러나 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베이징에 들어온 탱크는 전속력으로 시위대를 향해 질주했다”고 회고했다. 팡 씨는 2009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지난주 톈안먼 23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에 들어왔다.
톈안먼 사태 당시 시위대는 집회와 언론의 자유 등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 보장을 요구했고 관료의 부패와 족벌주의를 비난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누적된 불평등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는 특히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을 19세기 말 청조의 부패를 초래한 서태후와 비교하는 등 정권교체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해 4월 26일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사설에서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계획된 음모”라며 시위대를 향한 덩의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했다.
지난달 31일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중미대화기금은 톈안먼 사태로 투옥됐던 1000여 명 가운데 10여 명이 23년이 지난 지금도 교도소에 갇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중에는 이미 일흔을 넘긴 장야췬(江亞群·73) 씨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톈안먼 사태 직후 당국이 수배령을 내린 학생 지도자 21명 중 중앙민족학원 출신 3명은 아직 행방이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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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