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전남은 절반에 육박보건과목 선택도 7.8% 그쳐
3월 초 학생 180여 명이 다니는 강원도의 한 공립고교에서 2학년생 A 군이 복통을 호소하며 교무실을 찾았다. 담임교사는 보건교육 담당 체육교사에게 학생을 봐달라고 부탁했지만 보건교사 자격증이 없는 체육교사는 “왜 아픈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임교사는 “의료전문가가 학교에 없다 보니 위급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며 “단순 복통이었지만 큰 병이었다면 대처가 안 돼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때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3학년생 B 군이 배가 아프다며 교무실을 찾았다. 담임교사는 새 학기부터 꾀병 부리는 학생의 ‘군기’를 잡아야 한다며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옆에 있던 이모 보건교사는 학생의 상태를 보고 급성충수염(맹장염)이 의심된다며 담임교사를 설득해 병원으로 옮겼다. B 군은 보건교사의 판단으로 제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환자가 자주 발생하는 학교에 의료 전문 인력이 없어 학생의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학교 보건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8일 경기 고양외고에서 결핵으로 학생 4명이 격리되고 120명이 잠복환자로 판정받은 데 이어 같은 달 26일 전남 영암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36명이 백일해를 앓는 등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보건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 스트레스가 늘면서 학내 질병은 늘고 있지만 학교 보건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시와 지방 간 격차가 심각했다. 서울 보건교사 배치율은 95.7%였지만 제주는 45.1%, 강원 전남은 각각 49.2%에 불과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국가직 교육공무원 정원과 예산이 제한되다 보니 주요 과목이 아닌 보건교사를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보건 교육도 등한시되고 있다. 학교보건법 및 교육과학기술부 고시에 따르면 2009년 3월 1일부터 초등학교 5, 6학년은 17시간 이상의 보건교육을 받고 중고등학생도 2010년부터 재량시간에 선택과목으로 보건교육을 배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보건교사는 “각종 법령에는 일선 학교에서 일정 시간 보건교육을 하도록 돼 있지만 실상은 재량시간에 형식적으로 수업이 이뤄져 내실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학교에서는 올해 보건교육이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전국 5441개교 중고등학교 중 보건교육을 선택과목으로 선택한 비율은 7.8%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일본은 학교교육법에 따라 2002년부터 보건교육이 체육교과와 함께 정규 교과 대접을 받으며 일선 학교에서 전면 실시되고 있다. 고등학교 보건교사 배치율도 90.9%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인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네덜란드 핀란드 등도 학교보건교육을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한미란 보건교사회 회장은 “도서 벽지 지역에는 보건교사가 부족해 2009년 신종 플루가 확산됐을 때 대책 회의에 미술교사가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며 “그러다 보니 한국 학생들은 심각한 전염병이나 질병에 걸려도 무턱대고 참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