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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법불아귀(法不阿貴)

입력 | 2012-06-05 03:00:00

法: 법 법 不: 아니 불
阿: 언덕 아 貴: 귀할 귀




한비자 ‘유도(有度)’편에 나오는 말로 승불요곡(繩不撓曲·먹줄은 굽은 모양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다)이란 말과 함께 쓰여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강조한 말이다. 한비의 시각은 이렇다. “뛰어난 장인은 눈대중으로도 먹줄을 사용한 것처럼 맞출 수 있지만 반드시 먼저 자와 컴퍼스로 기준을 삼는다. 지혜가 탁월한 사람은 민첩하게 일을 처리해도 사리에 들어맞지만 반드시 선왕의 법도를 귀감으로 삼는다.(巧匠目意中繩, 然必先以規矩爲度; 上智捷擧中事, 必以先王之法爲比)”

이런 점에서 한비는 군주가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에 자만하지 말고 법에 따라 다스릴 것을 강조한다. 수많은 군주들이 몰락한 원인은 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지식과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임의적인 잣대를 들이대 단죄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비의 시각이다. 그래서 말한다. “법을 받드는 사람이 강하면 나라가 강해질 것이고 법을 받드는 자가 약하면 그 나라도 약해질 것이다.(奉法者强, 則國强, 奉法者弱, 則國弱)” 강국이 되느냐 약소국이 되느냐 하는 것은 법에 대한 군주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군주가 엄격한 법치를 행하면 군주의 권위는 더욱 확립되고 권세 역시 강화되므로 법치가 제대로 서게 되면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에 따라 나라가 다스려지게 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라면 법에 따라 공정한 인사지침에 의거하여 인재를 등용해야지,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근거해 임용해서는 안 된다고도 한비는 강조한다. 사람의 평판이란 저마다의 이해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객관성을 결코 담보할 수 없고, 결국 그들이 담합하여 군주를 기만하고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정서에 의존하지 말고 일관된 적용이 가능한 법도에 의해 모든 일을 판단하라는 한비의 지적은, 공정한 경쟁보다는 아직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학연, 혈연, 지연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리 사회의 끼리끼리 조직문화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볼 수 있지 않은가.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