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주성하 기자, 脫南한 임수경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
주성하 기자
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불쌍히 여깁니다. 제가 보기엔 당신은 참 비운의 여인입니다. 세운 ‘공’에 비해 이처럼 바가지로 욕먹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3년 전 저는 ‘임수경이 북한에 뿌렸던 금단의 열매들’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당신을 ‘북한 주민들의 정신적 해방에 큰 기여를 한 공로자’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북한 주민들은 ‘탈남(脫南)’한 당신을 통해 한국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1980년대 말 북한 사람들이 아는 남조선은 ‘헐벗고 굶주리는 미제의 식민지’였습니다. 사람 못 살 그러한 곳에서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날아온 당신의 모든 행동과 발언은 너무나 거리낌 없었고 독재 사회에서 기죽여 살아온 흔적이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감옥에서 석방된 지 2년 뒤부터 북한은 수많은 아사자를 낸 고난의 행군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십만 명이 탈북했습니다. 사실 탈북자들을 변절자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변절하는 데 아주 지대한 공을 끼친 일등 공신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평양에 왔을 때 10대였던 저는 당신을 보면서 처음으로 당국의 선전에 의문을 품게 됐고 결국 훗날 탈북해 한국에까지 왔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당신을 보면서 남조선이 파쇼독재 국가가 아님을 알았는데, 당신은 지금도 한국이 독재국가라 주장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고 탈북까지 했는데, 당신은 탈북자들에게 변절자라고 합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습니까. 이제 반대로 당신에게 우리 탈북자들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탈북자에게 입힌 상처 말로는 못 씻어 北참상에 진정 가슴 아파해야 용서받아” ▼
주성하 기자
당신이 지금 대중의 비난을 받는 이유는 역사가 당신에게 부여한 사명과 다른,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반대쪽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박수 받아야 할 사람들을 미워하고, 함께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추종하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들에게 입힌 상처는 미안하다는 말로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 걸고 탈북한 용기를 격려하고, 독재와 세습 아래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에 가슴 아파하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에게 함께 분노한다면 그때는 탈북자들이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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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