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의정(議政) 문화를 꽃피워 선진 국회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새 국회법이 작동된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 5조 3항에 명시된 개원일(6월 5일)도 지키지 못했다. 13대 국회부터 무려 7대째 계속되고 있는 악습(惡習)의 되풀이다. 새 국회법을 만든 취지가 무색하다. 바느질은커녕 바늘귀에 실을 꿰는 준비작업조차 못하고 있는 꼴이다.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의 싸움이 국회 개원을 가로막고 있는 주요인이다. 국회의장단을 선출하는 개원은 여야 간에 상임위원장 자리를 배분하는 원(院) 구성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여야는 이미 국회의장과 부의장 후보까지 결정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은 원 구성 협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원을 거부하고 있다. 과거 쟁점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민생법안을 볼모로 잡은 것처럼 민주당이 원하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더 차지하기 위해 개원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이다. 국회법을 아무리 새로 고친들 잘못된 관행을 바꾸지 않는 한 국회 선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은 17, 18대 국회 때 야당 몫이었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되찾아오고 싶어 한다.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이 사실상 차단됐으니 입법 과정의 중간 관문이랄 수 있는 법사위라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법사위를 내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토해양위원회 정무위원회 중 하나는 반드시 위원장 자리를 갖겠다고 버티고 있다. 미디어 지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관리하고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열어 방송사 파업, 4대강,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정략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