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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을 들며/이현숙]‘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

입력 | 2012-06-07 03:00:00


이현숙 수필가

서울 지하철 7호선 건대입구역에서 2호선 열차로 갈아타려고 걸어가고 있었다. 한 남자가 어린 소년의 손을 잡고 간다. 둘 다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인 것 같다.

“이렇게 우툴두툴한 곳만 따라가는 거야.” “앞에 우툴두툴한 곳이 없으면 길이 없는 거야. 그럴 땐 옆을 짚어 봐” 하면서 자세히 일러준다.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인 것만도 서러울 텐데 어쩌다 아들까지 그런 운명을 타고났을까. 지팡이 끝에서 전해오는 한 점의 촉각만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전후좌우 위아래를 둘러보는 나는 무한한 공간에서 오는 빛으로 세상을 본다. 마치 무한대의 지팡이를 가진 듯하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모양과 현란한 색깔을 보지 못하는 그들은 과연 불행할까. 어찌 보면 눈을 떴다고 해서 세상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은 아니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 같은 길을 몇 년씩 오가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허다하다.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우리 눈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허다하다. 너무 커도 볼 수 없고 너무 작아도 안 보인다. 그래서 이것들을 보려고 망원경도 만들고 현미경도 만들었다. 하지만 망원경과 현미경으로도 못 보는 것이 허다하다. 태양은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 색이 합친 가시광선과 눈에 안 보이는 적외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 모든 파장의 빛을 내보낸다. 이 중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가시광선뿐이다. 한 개의 지팡이로 한 점을 감지하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수십억 광년의 거리에서 오는 별빛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 별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빛이 오는 동안 이미 그 별은 폭발해 버리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인다고 다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초음파를 통해 배 속에 든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볼 수 있고 움직이는 모양도 다 볼 수 있다. 박쥐는 눈이 퇴화돼 볼 수는 없어도 자신의 날갯짓을 통해 초음파가 물체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모양과 시간차를 이용해 곁에 있는 물체의 모양이나 거리를 안다고 한다. 그래서 눈이 보이지 않아도 벽에 부딪히지 않고 훨훨 잘 날아다닌다.

우리의 귀도 마찬가지다. 너무 큰 소리도 못 듣고 너무 작은 소리도 못 듣는다. 초음파는 우리 귀로 감지할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는 볼 수 없는 것이 훨씬 많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보다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훨씬 더 많다.

시각장애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보이지도 않는 건반을 어떻게 딱딱 정확히 짚어 소리를 내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두 눈 멀쩡히 뜨고도 못하는데 말이다. 한 통로가 막히면 다른 통로가 더 넓어져 그쪽 감각이 더 발달하기 때문이겠지만.

우리 뇌의 용량은 비슷해서 한쪽 감각을 잃었을 때 다른 감각으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 게다. 어찌 보면 시각장애인들이 두 눈 뜨고 다니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볼지도 모른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훨씬 넓으니 말이다. 그들은 한 개의 지팡이로 무한대를 보는데 나는 무한대의 지팡이로 한 점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현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