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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만나는 詩]째깍, 자정이 넘어간다… 깜빡, 일상이 눈 비빈다… 터벅, 하루가 지나간다

입력 | 2012-06-07 03:00:00


자정을 넘긴 시간. 세상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 놓인다. 텔레비전 채널이 돌아간다, 초원의 동물들이 점멸한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 어느덧 차가운 재로 변한 세상. 피곤한 몸을 잿빛 초원 위에 뉘인다. 죽음과도 같은 심연 속으로 한 칸 한 칸 잠긴다.

‘이달에 만나는 시’ 6월 추천작으로 김중일 시인(35·사진)의 ‘재의 텔레비전’을 선정했다. 4월 말 나온 시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창비)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김중일 시인의 이번 시집에선 유독 ‘자정’이란 시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낮은 직장에서 일하는 완벽하게 현실에 속한 시간이죠. 퇴근 후 시간, 특히 자정을 넘긴 시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라 좋아합니다.” 시인은 적막한 심야에 깨어난 사물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개성 넘치는 몽환적 시 세계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시는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시인은 “여러 차례 읽어서 제 시 속에 있는 시적 논리나 어법을 알게 되면 읽기 편해진다”고 설명했다.

장석주 시인은 “김중일의 상상력은 몽환과 아수라장인 현실 사이에서 움직인다. 이번 생과 다음 생은 하나로 겹쳐지고, 그 겹쳐짐 속에서 감각의 자명함은, 무릎에 물을 주는 아이나, 프레스에 잘린 손가락을 묻으니 하룻밤 사이에 무성한 나무로 자라는 환상을 부른다. 이렇듯 김중일은 서로 다른 물성을 갖는 것들을 포개면서 몽환적인 상상력의 즐거움을 만든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김중일의 시집은 쓸쓸하기도 하고 따스하기도 하고 때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연상될 정도로, 시편마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펼쳐 놓은 듯한 독특한 배경과 적확하고 절제된 언어 감각에 건배!” 김요일 시인의 추천사다.

이건청 시인은 홍윤숙 시인의 시집 ‘그 소식’(서정시학)을 추천했다. “88세 노시인의 정신적 풍경들을 여실하게 담고 있다. 감성도 부드럽고 이미지의 운용도 활달하다. 시인은 서문에서 ‘다가올 죽음 앞에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맞설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강한 정신이 백금처럼 빛난다.” 이원 시인은 김승일 시인의 첫 시집 ‘에듀케이션’(문학과지성사)을 추천하며 “김승일은 22세기에서 도착한 ‘독고다이’ 소년. ‘평범함보다는 평평함이 좋아’. 기존 문법을 가볍게 전복시킬 줄 아는 그를 새로운 전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쿨한 척’이 아니라 ‘쿨’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손택수 시인이 심창만 시인의 시집 ‘무인 등대에서 휘파람’(푸른사상)을 추천한 이유는 이렇다. “‘수련’이라는 한 편의 시 때문에 나는 이 낯선 시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더러 한 편의 시는 몇 권의 시집이 지닌 무게를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다. 흐릿해진 사물과 나 사이에 화락 불꽃이 이는 걸 경험하고 싶다면 이 시집을 보라. 뿌연 안개들을 뭉쳐 투명하게 빚어놓은 이슬 한 종지가 여기에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