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중반 무렵 친노(親盧) 좌장(座長) 격인 이해찬이 한명숙 문재인 김두관을 만나 친노 내부의 교통정리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은 2012년 민주당의 대선주자로, 김두관은 차기(2017년) 대선주자로 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해찬은 “2017년에 내가 김두관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겠다”며 분위기를 띄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해찬의 뜻대로 구도는 정리되지 않았다. 김두관은 2012년 대통령선거에 직행(直行)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권력의지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는 법이다.
▷문재인과 김두관은 범(汎)친노지만 걸어온 길이 다르다.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신(家臣) 그룹으로 ‘성골(주류)’로 분류된다. 김두관은 이장(里長)을 거쳐 장관까지 올라간 자수성가(自手成家)형으로 스스로 ‘육두품(비주류)’으로 낮춰 부른다. 김두관 측은 “문재인과 달리 우리는 끊임없이 어려운 현실을 헤쳐 나왔다”고 차별성을 내세운다. 김두관은 현재 53세로 젊은 편이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친노에선 안희정 이광재 등 ‘386’ 세대가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 김두관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배수진(背水陣)을 치려는 또 다른 이유다.
▷2010년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김두관은 무소속으로 뛰었다. 경남에서 민주당세가 열악한 점을 감안해 자신의 개인 경쟁력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당시 여권에서 ‘정치 초년병’인 이달곤 후보를 내세워 반사이익을 챙겼다. 김두관은 오랜 지역 활동으로 다져온 친화력을 앞세워 득표율 53.5%로 당선됐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아성인 경남 교두보가 무너지자 여권에 ‘김두관 경계령’이 발동됐다.
▷김두관은 어제 “(7월 중순쯤) 출마 선언을 하게 되면 준비한 정책을 국민에게 털어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이장에서 청와대까지!’의 인생 스토리를 강조했다. 사실상 대선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새누리당은 김두관이 걸어온 인생 역정, 대선 승부처인 경남 출신이면서 서민적인 이미지에 주목한다. 노무현 바람에 역전당한 2002년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민주당의 다른 대선 예비주자들도 김두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여야가 겉으로 표는 안 내지만 내부적으로 김두관을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