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동전 탄생 12일로 30돌… 1982∼2011년생까지 다 모였는데 너만 어디로 갔니?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 5층. 빨간색 형광봉을 든 주차관리요원 한 명이 다가와 묻는다.
“아, 뭐 좀 찾느라고요.” 멋쩍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깔아놓은 박스 위에 수북이 쌓인 동전으로 향한다. 피식. 그건 정말 어이없다는 웃음이었다! 더 묻지도 않고 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동전더미를 헤치는, 어느새 검게 물든 손가락이 주차장 바닥을 뒹굴고 있는 먼지 뭉치들과 함께 눈에 들어온다. 그가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 줬다면 속내를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찾는 것은 ‘1998’이 새겨진 500원짜리 동전. 박스 위에 놓인 1355개의 동전을 직접 손으로 한 닢 한 닢 집어가며 일일이 확인해본다. 서울 중구 회현 지하상가에서 만난 한 화폐수집상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없어. 그렇게 쉽게 찾아지면, 그 정도 가격에 거래되겠어?”
○ 찾기 힘든 만큼 비싼 1998년 500원짜리 동전
증정용으로 1998년 제작된 민트(Mint) 세트의 실제 모습. 그토록 찾아 헤맸던, ‘1998’이 선명하게 찍힌 500원짜리 동전이 유난히 빛나 보인다. 촬영 협조 수집뱅크코리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그런데 1998년엔 왜 500원짜리 동전이 그렇게 적게 발행됐을까. 그 이유는 동전의 환수액과 발행액의 추이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1998년도 500원짜리 동전의 환수액은 643억6315만9000원. 당시 발행액(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보낸 500원짜리 동전의 액수, 제조된 동전의 액수와는 다름)은 179억1458만7000원이었다.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환수액이 발행액보다 더 컸던 때는 1998년이 유일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허리띠를 졸라맸던 국민들이 집 안에서 잠자고 있던 동전들까지 꺼내 사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새 500원짜리 동전을 만들 필요성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제조량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참고로 민트 세트의 ‘민트’는 주화를 제조하는 조폐창 또는 조폐국을 의미하는 말로, 고대 로마의 ‘유노모네타(Juno Moneta·유노 여신의 신전)’에서 유래됐다. 고대 로마에서는 주로 사원에서 동전이 만들어졌는데, 당시 캄피돌리오 언덕의 유노모네타가 화폐 제조처로 유명했던 것. 그리고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이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주화에는 민트 마크가 표시되어 있다.
▶ [채널A 영상] 한국에 1000원짜리 동전 있다?
민트 마크는 동전을 만든 조폐창이나 조폐국을 나타내는 이니셜 마크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동전이 만들어진 조폐창을 문자나 숫자, 기호 등으로 표시한 것이 그 시초였다.
○ 만 30세 생일 맞은 500원짜리 동전
김정식 수집뱅크코리아 대표가 50만 원에 사들여 보관중인 1998년에 만들어진 500원짜리 동전.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주택 거실. 20년 된 붉은 돼지저금통이 배를 벌리고 누웠다. 아버지와 어머니, 딸과 사위 등 네 사람은 500원짜리 동전과 100원짜리 동전을 일일이 갈라놓으며, 동전에 새겨진 작은 숫자들을 읽어나갔다. 동전 독이 옮을까 바닥에 신문지 여러 장을 까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이 찾는 것도 1998년도 500원짜리 동전. 원하는 숫자는 생각만큼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 1993년이네.” “아, 1996년이네.” 흥분과 아쉬움이 뒤섞인 탄성이 쏟아져 나오길 수차례. 10개씩 쌓아둔 500원짜리 동전이 10줄, 20줄 늘어갈수록 네 사람의 얼굴에 깃든 ‘희망’은 점차 옅어졌다. “설마 하나는 나오겠지”라던 추임새도 어느새 “동전이 얼마나 모였는지 궁금했는데, 이참에 세어나 두자”란 자조로 바뀌었다. 동전 분리와 함께 네 사람의 ‘보물찾기’도 끝이 났다. 총 1209개, 액수로는 60만4500원. 1982년부터 2011년까지 모든 연도에 만들어진 동전을 찾았지만, 1998년도만큼은 손에 쥐지 못했다.
잠깐. 1982년부터라고? 맞다. 500원짜리 동전이 발행된 지 올해로 딱 30주년이다. 500원짜리 동전이 처음 발행된 때는 1982년 6월 12일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500원도 지폐였다. 지폐의 왼쪽에는 이순신 장군이, 중앙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500원이 지폐 대신 동전으로 그 모습을 바꾼 이유는 경제 규모가 커지고 물가가 올라 고액 동전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동전으로는 가장 큰 액수였던 100원짜리 동전이 처음 나온 것은 1970년 11월 30일이었다.
12년이 지난 후 1인당 243달러였던 국민총생산(GNP)이 약 1500달러로 6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물론 물가도 많이 올랐다. 당시 기사는 “이렇게 보면 500원짜리 주화는 새로운 주화의 발행이라는 의미보다 100원짜리 주화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국은행 관계자들의 입을 빌려 설명했다.
500원권 지폐가 쉽게 더러워져 수명이 짧았던 것도 동전이 나온 이유 중 하나였다. 당시 500원권 지폐의 평균 수명은 9개월에 불과했다.
1만 원권 2년 6개월, 5000원권 2년 3개월, 1000원권 1년 2개월에 비교해 보면, 상당히 짧았다. 이는 500원권 지폐에 사용된 종이의 질이 다른 지폐들보다 떨어졌을 뿐 아니라 그 사용 빈도가 높았고, 사람들이 다른 지폐에 비해 함부로 다루는 경향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전에 새겨진 비상하는 학은 한국 경제의 제2 도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학은 암컷일까, 수컷일까. ‘새 박사’로 유명한 조류학자 윤무부 박사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원래 학의 암수는 외양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 동전에 새겨진 작은 형상이라면 전문가의 눈으로도 구분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 않은가.
2006년에는 학 모양 디자인과 관련해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병수 전 한양대 디자인대학 겸임교수는 자신의 책 ‘우리나라 기념주화’에서 “여기(500원)에 등장하고 있는 두루미가 어떤 종류의 두루미인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묘사도 사실에 근거한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두루미는 우리보다 일본인들이 더 좋아하는 새로서 일본은 1980년대 초에 발행한 1000엔권 지폐에 암수 한 쌍을 넣어 사용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965년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해 1973년 한국은행으로 옮겨 20년 넘게 화폐디자인 업무에 종사했었다.
○ 500원짜리 동전 9000여 개를 살펴보다
7일 오전 기자(오른쪽)가 NH농협은행 본점에서 500원짜리 동전 5000개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고 있는 모습. 포기하고 싶을 때쯤 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1987년도 500원짜리 동전도 한 개에 3000원을 호가한다. 사용하지 않은 것은 10만 원에 달한다. 느려졌던 손이 다시 빨라졌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보통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1973년부터 1993년까지 발행된 500원권 새 지폐는 4000원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1962년부터 1967년까지 발행된 500원권 새 지폐는 30만 원, 1966년부터 1975년까지 발행된 500원짜리 새 지폐는 2만 원 정도 한다. 이순신 장군이 ‘모델’로 등장하기 전에는 500원짜리 지폐에 숭례문이 인쇄되어 있었다.
다시 지난달 26일.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사위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인과 함께 반도 차지 않은 저금통을 또 열었다. 500원짜리 동전만 넣어두었기에, 따로 귀찮은 분리작업도 필요하지 않다.
20여 분이 지난 후 사위가 내뱉은 것은 긴 한숨뿐. ‘혹시나’ 했던 기대는 후회로 바뀌었다. 254개의 동전 중 ‘1998’이라는 숫자의 주인공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바지 주머니를 뒤져 500원짜리 동전
3개를 살폈다. 역시나 ‘꽝’. 하루 동안 모두 1466개, 총 73만3000원의 500원짜리 동전을 살펴봤지만, 가족끼리 한우를 먹으려던 토요일 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위는 ‘차라리 500원권 지폐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한 화폐수집 인터넷 카페에는 “1998년도 500원짜리 동전을 오락실에서 찾았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축하한다”는 댓글들과 함께 “로또 확률보다 귀한 것인데”라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그래.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편의점과 야구 연습장을 찾았다. 음료수의 바코드를 찍는 점원 옆에서, 1000원을 500원짜리 동전 2개로 바꿔가는 손님들 옆에서, 코를 박고 500원짜리 동전을 살폈다. 일주일에 한 번 은행에서 25만 원어치를 바꿔오지만, 편의점에는 82개의 500원짜리 동전밖에 없었다. 그나마 야구 연습장에서는 1100개가 검은색 작은 가방 속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NH농협은행 본점을 찾아 250만 원어치에 해당하는 500원짜리 동전 5000개도 들여다봤다. 하지만 1998년도 500원짜리 동전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요새 사람들은 잔돈 가지고 다니는 것을 싫어해요. 1000원으로 딱 떨어지지 않으면, 보통 다른 물건들을 더 사서 맞추려고 하죠.”(편의점 점장 김모 씨·27)
“나도 1998년도 동전이 비싸게 팔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1980년대 동전을 보면 잘나가던 옛날 생각이 나서 잘 안 봐.”(야구 연습장 직원 전모 씨·68)
간혹 옆에서 건네는 말들이 귓속에 들어와 박혔다. 문득 5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편의점 매장 진열장 한 칸에는 과자들 총 33 종류가 진열돼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500원짜리는 하나도 없었다. 매장 전체에서 500원짜리 상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시후레쉬’ ‘후라보노’ 등 껌 한 통, 모나미 노크볼 등 펜 한 자루가 500원이었다. 손쉽게 사먹는 삼각김밥도 800원이었다. 1998년 500원 동전의 몸값은 한없이 높아졌지만, 다른 ‘친구’들의 몸값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대다수의 그 동전들은 여기저기를 떠돌다 제 수명을 다하는 날 용광로에서 생을 마감한다. 한국은행에 환수된 동전은 ‘정사(整査)’ 과정을 통해 폐기 여부가 결정된다. 폐기가 결정된 동전은 국내 원자재 업체에 팔려가, 용광로에서 다시 금속 본래의 모습인 동과 니켈로 돌아간다. 500원 동전은 동 약 5.78g과 니켈 약 1.9g으로 만들어져 있다. 동과 니켈의 시세에 따라, 또 다른 ‘수익’을 남겨주고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야구장과 편의점, NH농협은행 본점에서 살펴본 동전은 총 6182개. 자판기와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동전들까지 합치면 9003개였다. 1만 개에서 딱 997개가 모자랐다. 1만 개를 채우기 위해 다시 오락실로 향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지막까지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결국 고개를 가로저으며 오락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공교롭게도 ‘97’에서 멈춰 섰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래, 이건 하늘의 계시다. 어찌해도 ‘98’은 절대 못 찾는다는,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P.S. “한국은행에 있는 사람한테 들은 말로는 1998년 민트 세트가 4000개 정도 한국은행에 남아 있대요.” 한 화폐수집상에게 들은 말이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1998년도 500원짜리 동전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말 한국은행은 1998년도 민트 세트를 4000개나 가지고 있을까. 한국은행의 공식적인 답변은 “확인해 줄 수 없다”였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바로잡습니다]9~10일자 B1면
◇9~10일자 B1면 ‘1998년생 500원짜리 동전 실종사건’기사에서 ‘서울 중국 회현지하상가’는 ‘서울 중구 회현지하상가’로 바로잡습니다.